안녕하세요. '메이커 마틴' 입니다. 저는 공대출신이고, 스타트업 왓챠에서 4년간 근무했습니다. 현재는 '페인 킬러 슈즈' 알타핏'을 창업해 브랜드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첫 제품이 출시되고 벌써 4년이 지났는데요, 감사하게도 저희 대표 제품인 '알타핏 리커버리 슬리퍼'가 누적 70만 족 판매되었고, 올해는 지난 2년간 열심히 개발한 3개의 신제품이 런칭될 예정입니다.
신발업과 제조업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알타핏 창업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첫 제품을 개발하며 '오 이제 좀 배운듯?' 이라고 생각했는데, 샌달이나 클로그를 개발하면서 또다시 어마어마한 시행착오를 만났습니다. (라고 쓰고, 돈과 시간이라고 읽습니다😂)
특히 올 가을 출시될 클로그는 프로토 금형을 6차까지 제작하면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제가 다루는 상품은 금형이 필수적인데, 지금까지 금형을 100개 이상 만들면서 최소 20개 이상은 다양한 이유로 폐기한 것 같아요. 또 운영적으로도, 제조업의 숙명인 MOQ(최소 주문 수량)로 인한 현금 흐름의 중요성을 피부로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세계가 익숙했던 제가, 제조업 창업을 하며 느꼈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각각 세 가지씩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제 경험은 금형이 수반되는 신발 제품에 국한되며, 제조업력 또한 5년이 안되기 때문에, 한정된 경험에서 오는 한계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통점 1. 자원이 적다면, 초기 팬덤은 더욱 니치하게
왓챠피디아의 초기 성장은 영화를 사랑하시는 시네필과 영화광 분들이 이끌었어요. 이분들의 열정적인 별점 모으기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더 많은 영화를 봤는지, 내 취향분석은 어떤지 경쟁하듯 입소문이 나며,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바이럴되었습니다.
'페인 킬러 슈즈' 알타핏의 경우, '족저근막염 슬리퍼'로 '발이 아픈 분들'에게 집중했습니다. 퍼포먼스 광고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정말 제품을 좋아해주실 초기 코어 고객분들이 초기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여전히 '발이 아픈 분들'은 알타핏의 코어이고, 확장해서 발이 아프신 분들을 많이 접하시는 트레이너분들에게도 저희 제품을 많이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할 정도로 니치한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초기 제조 브랜드일수록. 이미 큰 대중에게 어필하는 큰 브랜드와는 경쟁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시작을 니치하게 한다고 해서, 그 이후에 확장이 불가능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공통점 2. 프로토타이핑은 어디서나 진리
여느 스타트업처럼, 왓챠 또한 '린 스타트업' 정신에 입각해 프로토타이핑 기법을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기능 출시의 의사결정을 A/B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정량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첫 제품 '리커버리 슬리퍼'를 만들던 제게, 이러한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설계 초반부터 3D 프린터를 적극 이용해서, 미완성이어도 실물을 자주 보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금형을 만들어서 실물 제품을 소량으로 판매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금형을 만드는 순간 고정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 첫 금형 이전에 많은 반복과 피드백 루프를 돌리는 게 중요했어요. 화면에서 3D 렌더링을 보거나 도면으로 2D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모양대로 프린트된 3D 목형을 손으로 만져가며 이리저리 돌려가며 볼 때, 압도적으로 더 높은 퀄리티의 피드백이 나왔거든요.
개발하는 상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3D 프린터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서 전보다 더 다양한 소재와 색상에 대한 프로토타이핑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첫 제품인 '리커버리 슬리퍼' 개발 시에는 이렇게 부드러운 경도로 프린트하는 게 가격이 많이 비싸서 시도를 못했는데, 최근 출시한 '샌달'의 경우는 경도가 부드러운 소재의 3D 프린팅을 통해 금형 제작 전 실제 착용 테스트를 해볼 수 있었어요. 프로토타이핑은 단기적 물론 돈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통점 3. 기능재 vs 취향재
스타트업에서 '페인킬러 vs 비타민' 이라는 프레임이 있습니다. 고객이 겪고 있는 문제를 즉각 해결하는 '페인킬러' 서비스인지, 삶의 질과 행복을 장기적으로 증진시키는 '비타민' 서비스인지를 구별하는 프레임이죠.
(성숙기에 따라 이 두 가지가 더 섞이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핵심은 한 쪽으로 분명히 기울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저는 '기능재' vs '취향재'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데요, 초기 상품 기획에서는 조금 극단적으로 한 쪽으로 치우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알타핏은 명확히 '기능재'를 선택했습니다. 족저근막염, 발목 통증 같은 명확한 페인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족부 생체역학 이론의 근간까지 내려가서 설계를 했습니다. 예쁘고 힙한 슬리퍼가 아니라, 발 아픈 사람들의 통증을 줄여주는 슬리퍼로 포지셔닝한 거죠.
자원이 많은 회사는 '기능재'와 '취향재'의 비율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개인이 만드는 상품의 경우는 한 쪽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율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핵심 역량이 '취향재'인지 '기능재'인지를 묻는 게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첫 창업이고 자원이 제한적인 경우, 창업자의 핵심 역량이 곧 제품의 역량이 되기 때문에 본인과 맞지 않는데 트렌드에 맞아서 선택한다면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이점 1. 한 번의 이터레이션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이 든다
왓챠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기획서 쓰고, 개발자와 얘기해서 빠르게 마케팅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었어요. 특히 '왓챠 성적표'라는 마케팅 프로덕트는 정말 빠르게 기획하고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단 배포하고, 작은 에러는 나중에라도 발견되면 빠르게 수정해서 배포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제조 상품에서는 한 번 금형을 만들어서 돌리는 이터레이션을 하는데 최소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열심히 설계해서 금형을 만들고 테스트를 해봤는데 수정사항이 생기는 경우가 당연하게도 많이 생깁니다.
미세한 수정이나, 금형을 더 "파내는" (즉, 제품이 물리적으로 더 "커지는") 쪽의 수정은 가능하지만, 수정범위가 크거나 금형을 "메꾸는" (즉, 제품이 물리적으로 더 "작아지는") 쪽의 수정은 매우 어려워요. 그리고 돈을 더 지불해도 절대적으로 드는 시간을 줄일 수가 없어요.
더군다나 제가 돈을 설령 두 배로 더 준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준비하는 업무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크게 줄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의 실수는 정말 오롯하게 비용과 시간으로 되돌아옵니다.
차이점 2. 코드는 영원하지만, 상품의 질은 꼭 그렇진 않다
소프트웨어는 한번 잘 돌아가는 코드는 대개 계속 잘 돌아갑니다. 물론 사용자나 데이터가 급격히 커지거나, 운영 환경이나 인프라가 바뀌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클라우드와 도커의 발전으로 이런 문제들은 점점 더 줄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양산 상품은 절대 안심할 수 없습니다. 시제품으로 받은 제품과 양산품이 다른 경우는 정말 흔히 존재하고, 이미 안정화된 양산품의 퀄리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작년 여름에 거의 5억원 어치의 제품을 폐기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금형에도 수명이 있습니다. 저희 제품이 일반 제품 대비 더 부드러운 재료에 아치 구조로 인해 더 두껍게 생기다 보니, 일반 금형보다 수명이 더 짧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수 검사를 해보니, '닳은 금형'으로 문제가 생긴 양산품이 발견되었어요.
엄청난 물량을 돌려야 하는 여름에 그런 일이 생겨서, 급히 금형을 새로 파면서 기존 것들을 버리고, 만들어진 양산품은 전수검사를 하고 나니 5억원 상당의 제품을 폐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컨테이너가 입고될 때마다 샘플링 검사를 하는데, 신제품이든 기존제품이든 늘 두근두근대며 박스를 열게 됩니다.
차이점 3. 현금이 더 많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서는 매출이 터지면 오롯이 현금으로 전환되기 쉬워요. 규모에 맞게 서버 운영과 CS를 준비해야 하겠지만, '준비된 재료가 소진되어 오늘 장사를 마무리합니다' 같은 경우는 보통 생기지 않아요.
하지만 상품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버스탁'(재고 과잉)과 '쇼티지'(재고 부족) 사이의 어딘가를 걷게 됩니다. 남아도 고민이고, 잘 팔려도 고민이죠. 몇 개를 주문할 것인가, MOQ(최소 주문 수량)은 몇 개인가, 재주문 시 리드타임은 얼마나 걸리나, 그러면 내 현금은 얼마나 재고에 잠기나로 연결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주문 후 제작되는 특수한 경우(예: 휴대폰 케이스 인쇄, 디자인 포스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품에서는 재고로 잠기는 현금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계절성이 있는 제품이라면 더욱 복잡해집니다. 여름 샌달을 봄에 미리 대량으로 만들어놔야 하는데, 만약 그해 여름이 유난히 시원하거나 경기가 안 좋으면 재고가 고스란히 남게 되거든요.
이런 재고 현금 흐름의 특성 때문에, 제조업 운영 시에는 '발생주의'적 모델링에 더불어 '현금주의'적 모델링도 동시에 필요합니다.
마무리
제조 브랜드를 창업하고 운영하며 느낀 점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서 배운 것들이 아주 많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객 중심 사고, 프로토타이핑,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같은 것들은 제조업에서도 여전히 유효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물리적 제약과 시간적 제약이 훨씬 크다는 점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코드 한 줄 바꾸는 것과 금형 하나 수정하는 것의 무게가 전혀 다르거든요.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계획하고, 더욱 꼼꼼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지금도 매일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고객들이 '아픈 발이 정말 편해졌어요!'라고 말씀해주실 때마다, 물리적인 제품이 주는 만족감이 소프트웨어와는 또 다른 보람을 준다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이번 글이 제조업 창업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