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걸 하려면, 먼저 성공을 보여줘야 한다. 반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고집부려서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 나영석 피디 <핑계고> 66화 (약간의 의역)
나영석 피디님이 전달해주신 메시지입니다. 피드에 뜬 이 릴스를 본 순간, 그간 제가 한 삽질의 역사들이 너무도 강렬히 떠올라,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성공에 이른것도 아니며, 여전히 매일 분투하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영석 피디가 언급하신 맥락은, 회사원으로서 커리어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의 본질은 회사원과 사업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기에, 제 창업 이야기를 나영석 피디의 멘트로 열고 싶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열정이 이끄는 대로 커리어를 선택하며 “큰 기회비용”을 치러왔습니다. 현재의 사업을 준비하며 “하고싶은 것”에 대한 고집을 꺾었고, 이후 시기적 운이 더해져, 현재 연매출 40억 브랜드를 감사히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 삽질의 역사와 내려놓음의 계기, 창업 스토리를 한 번 써보겠습니다.
1. 토마스 키친 - 고양이밥 사업
대학교 때, 반려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러시안 블루 고양이를 입양해서, 토마라고 이름을 붙이고 정성껏 돌봐주었죠. 그런데, 토마가 요로결석에 걸린 걸 알게 되고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했습니다. 생식을 만들어서 먹이게 됐죠. 영어로 된 고양이 영양학 책을 아마존으로 구입하고, 생닭을 사고 영양제도 섞어서 1일 권장 영양소 비율도 맞췄습니다.
그러다, 이 고양이 생식을 사업화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망치를 들면 다 못으로 보인다고, 고양이 카페를 보니 ‘아 수요가 있구나’ 라는 왜곡된 희망회로를 돌렸습니다. 처음엔 냉동보관 시설도 없이 집 냉장고로 시작했고, 포장재 선택부터 배송 방법까지 모든 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카페로 모집한 분들에게 샘플을 나눠주며 피드백을 받았지만, 정작 판로 개척은 막막하기만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하고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실패가 자명하기도 했고요. 당시 반려묘를 가진 사람도 지금보다 적었어요. 그 안에서도 하이엔드 사료는 더더욱 적었고요. 그렇다고 니치를 파고들어 마케팅할 역량도 전무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생식은 콜드체인이 중요한데, 지금처럼 컬리나 쿠팡도 없었던 시점이었습니다. 결국 휴학을 하고서 아주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첫 창업은 1년의 시간과, 병역특례를 하면서 모아둔 돈을 싹 날리는 결과로 마무리 됐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고스란히 실행했던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2. 왓챠
첫 직장을 3년간 다니고,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모펀드, 스타트업 조인, 창업 등 꽤 다양한 선택지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열정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스타트업 왓챠에 조인했습니다. 그 당시 왓챠는 지금의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는 없었고, 영화를 평가후에 추천받는 현 왓챠피디아 서비스만 존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자공학 전공인 제게, 머신러닝 박사로 구성된 독보적 R&D팀을 보유한 왓챠는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모든 선택지를 뒤로하고 당당히 왓챠의 사업개발 이사로 조인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진심으로 왓챠가 금방 유니콘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네, 근데 제 생각보다 많이 어렵더군요. 대표님을 열심히 도와 투자 유치도 하고, 영화 광고 상품도 키우고, 스트리밍 서비스도 출시했지만, 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빠른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동료들과 제 인생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았던 시기를 보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4년이 지나고 개인적으로 심각한 번아웃이 왔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3. 케이튜브 - 한국어 학습 앱
이후 번아웃을 치유한다는 명목 하에, 마침 배우자님께서 해외에서 일을 하게 돼 저도 같이 해외에서 백수 생활을 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잠을 실컷 자고, 운동도 하고, 토이 프로젝트도 몇 개 했습니다.
해외에 있다 보니, 케이 드라마, 케이팝이 커지는 것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한국어를 배우는 앱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또다시 해보면 재밌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녹슨 코딩 실력을 끄집어 내서, 어찌저찌 혼자서 풀스택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마케팅해 보았습니다. 유튜브 클립을 임베딩 하고, 그 위에 한국어 교육 컨텐츠를 얹는 방식이었습니다.
트래픽은 잘 모였습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일이더군요. 마지막으로 수익화를 3개월만 더 해보고서 안되면 접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안에 유의미한 수익화에 실패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서버를 내리고, 서비스를 접었습니다.
4. 알타핏 - “페인 킬러 슈즈”
건강한 백수 남편이 수년간 월급을 갖고 오지 않았지만, 제 배우자님께서는 한 번도 이에 대해 불평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스스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지금까지 내린 의사결정 기준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시했습니다. 소프트웨어에 집착하지 말자. 하이테크에 집착하지 말자.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오히려 반대쪽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시장 조사와 고민 끝에, ‘기능성 풋웨어’를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첫 시작 제품을 ‘기능성 슬리퍼’를 선택하였습니다. 먼저, 미국이나 일본을 보니, 리커버리 풋웨어 제품들이 많았고, 한국도 그러한 시기로 진입할 것 같았습니다. 일정 수준의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제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금형’ 이라는 부분이 어느정도 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리커버리 제품에 대해서도 평균 이상의 사용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 엔지니어적 집착을 십분 활용해 직접 2D, 3D 도면을 고쳐가며 영혼을 갈아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처음 만들어 보는 제품이라,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신발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보니, 업계에서는 알지만, 초보라서 모르는 실수들이 많았습니다. 충격 흡수를 위해 돔 구조를 만들었는데, 보행시에 진공이 만들어 지면서 “뾱뾱” 소리가 나서, 초도 생산 후에, 금형을 수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삽질은 야심차게 준비했던 장식용 스트랩 탈 부착 기능이었습니다. 나름의 필살기라는 생각으로, 탈부착용 스트랩을 만들어서 대량 생산을 하였는데, 정작 실제 런칭후 사용을 해보니, 어느순간 떨어지는 경우가 생겼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해당 기능을 퇴역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삽질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시장의 때가 맞았는지, 저희 첫 제품이자 플래그십 제품인 ‘알타핏 리커버리 슬리퍼’는 출시후 지금까지 4년간 누적 70만족 판매가 되었고, 올해는 지난 2년간 개발한 샌달/클로그/스니커즈 제품이 런칭될 예정이라 제가 사업초기부터 구상한 ‘기능성 풋웨어 라인업’을 1차적으로 완성하게 될 것 같습니다.
5. 이키가이
작년 어느날, "이키가이"라는 커리어 결정 프레임워크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요는, 잘하고 + 좋아하고 + 돈 벌수 있고 +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커리어 선택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알타핏의 경우를 돌아보면, 결과론적이지만, 제품 설계는 제가 잘할 수 있었고(잘하는 것), 운동 후 회복에 관심이 있었으며(좋아하는 것), 시장 수요가 있었고(돈이 되는 것), 발아픈 분들의 편의를 개선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사회적 가치). 네 가지가 겹치는 지점을 운좋게 찾았던 것이죠. 지난날 제가 내린 결정들을 복기해 보니. 기존에 '좋아하는 것'에만 집착하던 세월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좋아한다고 잘하는 건 아니고, 잘한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금형기반의 제품 기획/설계를 직접 하기 때문에, 실물 제품을 개발해 커머스 창업을 희망하는 예비 창업가 분들이 제게 종종 자문을 구하곤 합니다. 과거에는 기술적인 답변들을 충실히 드리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것보다도 더 상위 개념에서, '이키가이'에 맞는 아이템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아직 이키가이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저는 삽질을 이미 10년 이상 한 뒤에야, 이카가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보다 훨씬 빨리, 자신만의 이키가이 여정을 시작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