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관계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사람들과 깊게 연결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진부한 철학적 질문처럼 들릴지 몰라도, 인간 관계는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건강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적고, 실제로 더 오래 산다는 연구는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을 포함한 선진국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가족과 아이들" 위에 둔 3개 국가 중 하나이다. 그 외,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를 1순위로 꼽았다.
그래서인지, 매해 자살율도 고점을 갱신하고, 심지어 소멸 위기에 가장 근접한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
이런 환경에서 진짜 "인간 관계"를 위한 소셜 앱을 런칭을 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인스타 허세'와 SNS 커뮤니티가 출산율과 여러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나오는 나라에서, "가족과 친구들(Friends and family)" 를 위한 SNS가 한국인들에게 공명을 할까?
이게 내가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을 위한 소셜 미디어 레트로 앱을 처음 봤을때 가진 의문이었다.
레트로(Retro)는 어떤 앱인가?
레트로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PM이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 출신 네이선 샤프(Nathan Sharp)가 런칭한 친한 친구와 지인들을 위한 폐쇄적인 SNS이다. 알고리즘도, 도파민도 아닌, 진짜 "의미있는 사람들"과만 연결되어 매주 내 인생의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는 앱이다.
따라서 여타 SNS처럼 모르는 사람의 콘텐츠가 대다수인 피드와 달리 알고리즘이나 광고 따위 없이 진짜 친한 지인들이 올린 콘텐츠만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레트로는 피드, 스토리, 릴스에 질린 사용자들에게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말을 건다. 알고리즘도, 팔로워 숫자도, 광고도 없다. 단지 "이 주에 가장 기억하고 싶은 하루"를 떠올려 기록하도록 도와줄 뿐이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보 과잉과 자극적인 알고리즘으로 SNS 피로도를 호소해왔다. 갈수록 전문 크리에이터 수준의 콘텐츠가 아니면 인스타에 사진 한 장 올리기를 꺼려한다. 릴스도 마케터들이 떡상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콘텐츠가 아닌 이상 열심히 만들어 올려봐야 조회수가 터질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조회수도, 알고리즘의 선택도 중요하지 않은 인스타 스토리만 올리는게 추세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스타에서 이 "스토리" 기능을 처음으로 도입을 한 사람도 Nathan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Nathan은 스냅챗에서 영감을 받아 인스타 스토리 기능을 도입하며 찐친들만을 위한 사적인 SNS의 니즈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뒤 인스타를 떠나 레트로 앱을 창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프라이빗 소셜앱(SNS)의 글로벌 사례
그의 문제 정의는 정확했다.
특히나 코로나를 겪으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MZ세대들에게는 분명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이들은 한동안 "가장 외로운 세대(the loneliest generation)"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니즈는 한국에서도 코로나 직후 MZ들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팝업에 더 열광하는 모습, 한물 갔다고 여겨졌던 네이버 블로그에 사적인 기록을 남기는게 트렌드가 된 모습 등으로 발현이 되었다.
"사람들과 더 깊게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와 "외로움"은 전세계인들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해외에서도 알고리즘 기반의 자극적인 SNS에 반대하는 "Anti-social social media"가 한동안 유행하여 실제로 Be Real, Locket 등의 "친한 친구"와 "진실성(authenticity)" 기반의 앱들이 바이럴이 되었다.
Be Real 사례
Be Real은 인스타처럼 꾸며진 모습이 아닌 본인들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컨셉 하에 하루에 특정 시간에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공유를 해야했다. 백 장의 사진을 찍어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바로 그 순간 가장 "리얼한" 본인의 모습을 공유한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Be Real은 단시간 내에 틱톡 바이럴을 타고 엄청난 사용자와 투자금을 유치하는듯 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은 꾸밈없는 사진은 재미도 감동도 없다는걸 깨닫고 빠르게 리텐션이 꺾이기 시작했다.
Locket 사례
Locket Widget도 가까운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는 기능 하나로 틱톡에서 바이럴이 되며 급성장을 했다. 핸드폰 화면에 Locket 위젯을 깔면 애인이나 가족 등 친한 사람들에게 아무때나 그들의 메인 화면에 사진을 보내 일상의 순간을 공유하는 위젯이었다.
창업자가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더 자주 사진을 주고 받기 위해 만들었던 서비스가 뜻하지 않게 대박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SNS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를 도입하지 않고 Locket을 수익화할 방법은 한정적이여서 아직까지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레트로가 맞서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
이러한 전례 속에서 레트로도 비슷한 문제를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광고 없이 친구들과만 공유하는 포토 저널(Ad-free friends-only social photo journal)"이라는 컨셉을 앞세운 레트로는 일주일에 하루를 기억할 만한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사람(people first)"을 우선순위로 두며 사용자의 "개인정보 및 안전(privacy and safety)"를 가장 중요시한디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말한다.
인생을 주단위로 계산하면 사람들이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우리에게 평생 주어진 시간은 4,000주로 생각보다 회소하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가속도가 붙는데, 레트로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살아온 날들을 회고할 수 있는 사진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기록들을 의미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말이다. 이렇게 삶을 능동적으로 회고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공유할 때 인생이 더 가치있다는 것이 레트로의 철학이다.
프로덕트 철학 vs. 현실 사용자 경험
여기까지 보면 Nathan의 철학은 명확했다. 문제 정의도 분명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순간을 공유하자는 철학은 누구나 추구하는 바이다.
문제는, 앱을 여는 순간 사람들이 그 "이상"을 잊는다는 점. 그리고 성인이 된 후, 현실에서 "친한 친구"라고 부를 만큼 많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어른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인플루언서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버려야 할 것 같은 온라인 세상에서 자극적인 도파민과 엔터테인먼트를 인간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매일 출퇴근에 찌든 지하철에서 유튜브나 인스타 릴스를 보며 머리를 비우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친한 지인들의 사진들을 보며 애틋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그 관계가 아주 특별한게 아닌 이상 내 사진을 올려야 남의 피드까지 볼 수 있는 레트로의 기능대로 따라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이 특히나 인간 관계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어른들의 진짜 친구 사귀기"의 문제 또한 비단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옥스퍼드대 진화인류학자인 던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사회에 나온 뒤로 정말 친하게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수는 최대 5명, 평생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통계적으로 "행운" 혹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그 외,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관계 수가 최대 150명 정도라고 하는데 이를 이른바 "던바의 숫자"라고 명하기까지 하였다.
철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질문은 남는다.
레트로는 이토록 따듯한 철학과 명확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했지만, 그 철학만으로 사용자를 붙잡을 수 있을까? 안정적인 수익화를 이룰 수 있을까? 기존의 같은 문제를 풀고자 했던 소셜 미디어 앱들이 아직 넘지 못한 산을 레트로가 넘을 수 있을까? 특히 관계 피로, 앱 피로, 신뢰 피로가 만성화된 한국 시장에서 말이다.
대부분 소셜 미디어의 성공 가능성은 "철학"보다는 "리텐션"이 결정한다. 결국 남는 건 기술적, 디자인적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다. 이 앱이 어떻게 사람들의 습관을 설계할 것인지, 어떤 감정을 남기고 다시 돌아오게 만들 것인지가 관건인 것이다.
누구를 위한 인터페이스인가?
그런 의미에서 레트로 앱을 처음 다운받았을때, 나는 메인 화면에서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메인 페이지의 최상단에는 "Week 20"라는 문구가 써 있었지만, 정확하게 무얼 의도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Nathan의 레트로 소개 세션을 듣고 나서야 이 문구가 2025년의 20번째 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메세지는 놀랍도록 철학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UI만으로는 전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레트로가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가지고 있더라고, 맥락없는 "Week 20"라는 문구는 사람들의 행동을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듯 했다.
또한, 레트로는 본인의 사진도 올려야 친구 추가한 사람들의 기록도 볼 수 있는 장치를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보기 위해 굳이 내 삶을 기록해야 하는 이 설정이, 어떤 사용자에게는 귀찮음이라는 진입장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나의 하루가 딱히 특별하지 않은 날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UIUX 구조가 과연 레트로의 메인 페이지로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록을 의무가 아닌 발견으로
하지만 동시에 Nathan의 레트로 세션 이후 그와 직접 교류를 하면서 깨달은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Nathan의 레트로 피드는 아예 다른 앱인것 마냥 너무 재밌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사람들은 집-회사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Nathan의 피드에는 실리콘 밸리의 복지 좋고 반짝이는 사무실, 성공과 행복의 냄새가 풍기는 야외 스몰 웨딩, 전세계를 여행하며 인생을 즐기는 친구들의 사진 등이 올라와 있었다.
같은 "하루 한 장"이지만, 삶의 구조와 밀도 자체가 달랐다.
기록할 만한 일이 있는 사람에게 이 앱은 "기록의 축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록의 의무"가 될 수도 있다. 앱은 같지만, 삶의 배경이 달라지면서 사용 경험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다.
따라서, 레트로가 정말로 모든 사람의 하루를 기록을 남길 만한 가치가 있도록 의미있게 만들어주고 싶다면, 사용자에게 사진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하루든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문장,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날에도 "기록할 만한 순간"을 발견하게 해주는 넛지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레트로가 "사용자에게 의미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앱"이 되기 위한 다음 스텝이다.
한국형 리텐션 전략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Nathan도 HOC 한국 세션에서도 말했듯, 초기 제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리텐션과 참여율이었다. 그래서 레트로는 처음 가입한 사용자들이 4명 이상의 친구와 연결이 되면 앱을 계속 쓰게 된다는 "아하 모먼트"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리텐션 관련 질문을 던져보자. 레트로가 한국이라는 특수 시장에서 리텐션과 그로스를 동시에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1. 정서적 반응이 진짜 "아하 모먼트"를 만든다.
성인이 된 후, "친한 친구 4명"은 솔직히 말해 일반인들에게 꽤나 높은 허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단순히 친구 4명을 추가하는 것보다 한층 더 감정적이여야한다. 한국인 사용자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연결되었느냐가 아니라, 그 연결에서 어떤 반응을 받느냐이기 때문이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조회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인스타 릴스보다 스토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팔로워들과의 교류와 유대관계 형성에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인스타 스토리가 올라오면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먼저하는 일은 "누가 내 스토리를 봤는지" 확인 하는 일이다. 어찌보면 관음증 환자 같지만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게다가 그 스토리에 좋아요, DM, 스토리 댓글이라도 하나가 달리면 그 특정 사용자와 정서적 유대가 깊어진다. 그래서 요즘 인플루언서들조차 팔로워와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의 척도를 댓글이나 DM 교류 등으로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서적 리턴이 없다면 한국 사용자는 금방 앱을 잊는다. 이건 단순히 UI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UX 설계의 문제다.
사용자는 나의 하루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었음을 확인할때, 우리는 다음 주도 사진을 한 장 남기게 되는 것이다.
2. 텍스트는 관계를 만든다
현재 레트로는 사진 공유 중심의 구조지만, 사람은 사진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중요한건 "왜 이 사진을 올렸는지", "이 사진을 찍는 순간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에 대한 한 줄의 컨텍스트(context)이다.
이는 다시 인스타 스토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 스토리에 부담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진을 공유하지만, 인스타 스토리의 직관적인 UIUX 덕분에 사진 위에 쉽게 텍스트를 남겨 감정을 함께 공유한다. 그렇게 단순한 사진이라도 "이거 어때?" 라는 작은 텍스트만 남겨도 사용자들과의 교류가 훨씬 더 풍성해져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레트로는 사진 중심을 강조하다보니, 정작 사진 바로 하단에 딸려오는 텍스트란은 크게 강조를 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만 레트에서도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이라던가 "이 사진은 어떤 하루였나요?" 등의 프롬프트를 통해 사용자들이 더 깊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면 더욱더 Private앱이라는 레트로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나 강한 회고적 성격을 띈 레트로에게 텍스트는 친한 친구들에게만 공유할 수 있는 사적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더 깊이있는 장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텍스트는 감정의 인터페이스다. 감정을 기록해야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이건 단순 UX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언어적 설계의 문제다.
3. 공유 앨범은 유입의 포털이다.
사실 레트로는 이미 한국에서 아주 유행할만한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 고해상도 프라이빗 공유 앨범 기능이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는 화질이 떨어지더라도 카카오로 사진을 덤핑하는 문화와 사진 공유용 구글 드라이브의 틈새를 파고드는 훌륭한 전략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레트로 사진 공유 앨범은 특히나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아도 앨범 링크만 있으면 사용자들이 앨범내에서 같은 행사에서 찍었던 사진을 공유하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엄청나게 편리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결혼식, 돌잔치, 워크숍, 세미나, 가족여행, 팝업 전시회 등 사진은 넘쳐나는데, 여러 사람이 찍은 사진을 한 곳에 모아 정리도, 공유도 피곤하다면 레트로를 사용하라는 전략은 생각보다 잘 먹힐 수도 있다.
"가장 감성적인 공유 앨범, 레트로로 만들어요"라는 단순명로한 메세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실용적 유입과 감성적 UX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저평가되고 있는 기능이 아닐까 한다.
4. 혼자보다 함께: 챌린지로 습관 설계하라.
한국의 사용자는 혼자보단 같이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인증하는 구조에 더 익숙하다. 지금은 피봇을 했지만 챌린저스처럼 함께 사진으로 인증하는 챌린지형 플랫폼이 흥행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챌린저스와 달리 레트로는 이런 챌린지를 통해 수익화를 하려는게 아니기 때문에 같이 무언가를 인증하는 챌린지 형태의 마케팅을 펼치면 오히려 개인이 1일1사진을 업로드하는 것보다 더 활발한 리텐션을 가져갈 수도 있다.
"매일 감사일기 쓰기", "오운완", "독서 인증" 등의 앨범을 만들면 사람들에게 같은 목적의식이 생겨 습관이 되고, 관계가 쌓이고, 결국 리텐션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온라인으로 함께 인증을 하는 챌린지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한국에서 어쩌면 레트로는 챌린저스 이후 한국형 인증 앱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광고 없는 소셜앱, 어떻게 수익화할까?
레트로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바로 "광고 없음(Ads-free)"이다. 메타, 인스타그램 같은 거대 SNS들이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그 자체로도 하나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광고 없이 지속 가능하려면 레트로만의 수익화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략은 레트로의 철학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Nathan은 한국에서 열린 레트로 세션에서 유튜브 프리미엄, 스포티파이, 스냅챗 플러스 같은 구독형 서비스를 참고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 사용자에겐 광고를 보여주되, 프리미엄 멤버십에 가입한 사용자는 광고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라는 구조. 또, 스냅챗처럼 멤버십 단계에 따라 점차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모델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월간 구독 경제에 이미 질린 사용자들은 디지털 월세에 허덕이고 있고, 처음부터 Ads-free라고 했던 앱이 나중에 일반 사용자에게 광고를 노출하게 되면 넷플릭스처럼 반감을 사기 딱 좋다.
게다가 레트로는 철저히 "사적 네트워크" 기반의 앱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에게 어떤 광고를 보여줘야 할까? 친구들과 나눈 사적인 기록과 메세지를 기반으로 타겟팅된 광고가 나온다면, 사용자 입장에선 꽤나 꺼림칙할 수 있다.
구독료에 대한 인식도 관계 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레트로에서 관계 밀도가 높은 사람들에겐 그 구독료가 "관계의 값어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굳이 매달 돈을 낼 이유가 사라진다. 결국 레트로의 멤버십을 관계의 깊이에 따라 지불 의향이 결정되는 구조다.
그래서, 레트로가 진짜 지켜야 할 철학은 여기다.
"기억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라."
레트로는 기능을 파는 앱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과 감정을 저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기억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기술을 제공하는 앱이다.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남기기만 한다면.
레트로가 강조하듯, 시간은 유한하고 하루는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하고 싶어서.
레트로는 바로 그 욕망을 수익화의 지점으로 삼을 수 있다.
기억을 저장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으로.
1. 한 해의 나를 인쇄하는 일
일 년 동안 하루에 한 장씩 남긴 사진들을 자동 정리해 포토북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 한국에서도 "하루 한 줄 감사일기" 앱이 실물 앨범으로 인화해주는 서비스를 성공시킨 전례가 있다.
매년 연말마다 틱톡과 인스타에서 유행하는 회고 릴스 템플릿만 봐도,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보고 싶어하는지는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레트로도 주간 회고라는 명확한 스탠스를 가지고 있기에, 52주가 지나면 이를 실물 앨범으로 인화해주는 서비스는 레트로다운 수익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출력이 아니라, "당신의 일 년은 이만큼 의미 있었다"는 감정의 전달이다.
또, 두툼한 앨범이 부담스럽다면 특별한 날에 친구에게 보낼 수 있는 엽서 인쇄, 또는 디지털 엽서 전송 기능은 가격대별 구간 전략에도 적합하다. 크리스마스, 생일, 명절 같은 시즌에 특히 유용하게 작동할 수 있다.
2. AI가 써주는 감정 보고서
챗GPT가 세상에 나온 이후, 가끔 엄마보다 심지어 나 자신보다 AI가 나를 더 잘 아나 하는 생각이 든다. 레트로도 사용자의 1년치 감정과 기록을 품고 있다면, 그 누구보다 "올해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내가 가장 자주 사진을 찍은 요일
- 가장 많이 함께한 사람
- 감정 변화 곡선
- 좋아하던 장소, 테마, 색감, 키워드
이 모든 걸 AI가 요약한 뒤, '올해의 나' 회고 리포트를 PDF나 디지털 형태로 제공한다면? 자기 회고, 심리테스트, 감정 인사이트에 열광하는 사용자들이 단발성 구매 혹은 구독 멤버십 업그레이드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건 하나.
이건 생산성 도구가 아니다.
"올해의 나를 누군가 들여다봐줬다"는 감정적 위로, 그게 핵심이다.
사람들은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산다.
레트로가 비즈니스적으로 유의미한 성장을 원한다면, 그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기억의 의미, 관계의 무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기능을 사지 않는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소유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리고 레트로는 그 순간을 설계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정서적 플랫폼 중 하나다.
우리는 왜, 오늘을 기록해야 하는가
레트로는 소셜 미디어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자극도, 경쟁도, 알고리즘도 없이 '기억하고 싶은 하루'만을 남기라는 이 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반대 방향을 향해 간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도전이다.
누구나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살아남는 시대에,레트로는 '기억의 사용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제안한다.
좋아요를 위한 사진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하루.리텐션을 위한 중독 설계가 아니라,
회고를 위한 잔잔한 넛지.
어쩌면 레트로는 가장 비즈니스 같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을 잃지 않게 해주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을 살아내느라 기억조차 제대로 못한 채 지나친 날들이 너무 많다.
그 하루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단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면, 그게 바로 기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듯한 진보가 아닐까.
레트로 앱 다운받기: https://2ly.link/27Eij
이 글의 영문 번역본 보기: https://hailyn.medium.com/the-app-that-doesnt-want-you-to-go-viral-why-retro-is-redesigning-social-media-for-memory-d206d399def0
- 이 글은 하이아웃풋클럽(HOC)에서 주최한 레트로(Retro)앱 CEO Nathan Sharp의 세션에 참여 후, 개인적인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한국에서 초기 Retro 사용자의 입장으로 개인적 견해로 작성이 되었으니, 정답보다는 개인적 의견으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비공식 전략가(쭌스): 프로덕트나 비즈니스에 대해 쉴새없이 고민하길 좋아합니다. PM 출신이고,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고,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심심하면 한 번씩 글을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