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인 2024년 전체 벤처캐피털(VC)사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투자한 총액은 1000억 달러(143조 원)~1100억 달러(약 157조 7000억 원)로, 사상 최대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보다 규모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2025년 1분기만 해도 VC들이 AI 분야에 투자한 총액이 약 600억달러~700억 달러로, 전체 글로벌 VC 투자 금액 중 53%~58%를 차지했어요.
AI를 향한 투자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데요. 이런 가운데 두 명의 VC 파트너가 현 상황을 진단하는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한 명은 샘 레신(Sam Lessin) 슬로우벤처스(Slow Ventures) 파트너, 다른 한 명은 세스 로젠버그(Seth Rosenberg) 그레이록(Greylock) 파트너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며, VC들의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이야기 뿐만 아니라 관련 시장 상황, 제품 개발 등 AI 비즈니스 전반에 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전했습니다. 이를 쟁점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팟캐스트 전체 내용은 이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티클 네비게이션]
인트로: 두 VC가 서로 부딪힌 이유
쟁점 1: AI 제품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
쟁점 2: AI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큰 시장을 열 것이다?
쟁점 3: AI가 근본을 바꾸는 기술 트렌드로서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트업을 배출할까?
쟁점 4: AI 스타트업에 시드 투자를 할 만 한가?
두 VC가 서로 부딪힌 이유
토론의 발단은 세스 로젠버그가 쓴 ‘Product-Led AI(제품 주도 AI)’라는 블로그 글이었습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이 글에서 제품 주도로 높은 가치를 창출하려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AI를 앱에 적용해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는 AI 스타트업들이 거대 기업을 만들 수 있을 만한 3가지 카테고리를 열거했습니다.
1) AI 우선 네트워크와 마켓플레이스 (AI-first networks & marketplaces)
2) AI 기반 신개념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Re-defining enterprise software categories)
3) 특수목적 서비스를 위한 코파일럿 (Co-pilot for services)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애플리케이션에 AI의 힘을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제품 개발자들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애플리케이션은 여러 기록 시스템과 연결되고, 여기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모두 수집할 수 있다. 따라서 AI 애플리케이션은 실리콘밸리 전체 시장에서 제품 개발 및 사업 전략을 추진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
반면 샘 레신은 여기 반박했습니다. 그는 스타트업이 AI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는 기존 IT 대기업들이 이미 데이터와 엔터프라이즈 클라이언트 네트워크, 소비자 제품 유통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수년에 걸쳐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해 놨다는 사실을 강조해요.
즉, 샘 레신은 거대 IT 기업들이 그동안 구축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자체 빌드한 생성형AI 제품을 내놓거나, 이미 출시된 제품에 AI를 적용해 제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이 시장에서 어차피 승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그는 1인 창업가(솔로프리너) 또는 소규모 팀이 AI를 사용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소정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내다 봤어요.
결론적으로 샘 레신은 오픈AI의 API를 호출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기 충분하지 않다며, AI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에 시드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도 합니다. 물론 그의 포트폴리오에도 AI를 기반으로 성장 중인 스타트업들이 있지만, 시리즈 A 또는 시리즈 B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이라고 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지금의 스타트업이 출시하고 있는 AI 애플리케이션은 오픈AI 위에 있는 얇은 층의 레이어일 뿐이다. 따라서 AI는 과거 클라우드 기술이 그러했듯, 솔로프리너나 소규모 팀이 기존보다 조금 더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이고 기존 기술 흐름의 연장선상일 뿐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콘밸리 VC들이 나서서 자칭 AI 스타트업들에 무지막지하게 투자하고, 수십억 달러의 회사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인 두 VC는 한 팟캐스트를 통해 AI 스타트업 투자 및 시장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AI가 변화를 일으키는 기술이며,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큰 이익을 줄 기술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의 방향성, 크기, 기술 변천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토론의 쟁점을 크게 다음 4가지로 살펴봤습니다.
쟁점 1: AI 제품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
세스 로젠버그는 앞서 언급한 블로그 글에서 스타트업들에게 기회가 될만한 AI 비즈니스 분야 3가지를 제안했습니다. 각각은 창업자들에게 창의적으로, 제품 주도로, AI 시장에서 치고 달려보라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투자 받으러 찾아 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반면, 샘 레신은 토론에서 이 3가지 분야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AI 애플리케이션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첫째, AI 우선 네트워크와 마켓플레이스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AI가 소셜 네트워크 외에 데이팅, 게임, 전문 기술 구인구직 마켓플레이스 등 네트워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 봤어요. 그는 AI 우선 마켓플레이스는 단순히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방식의, 검색 및 필터가 가득한 웹사이트의 모습을 띄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신, 두 개의 서로 다른 AI 비서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장소가 되리라고 봤죠.
예를 들어 AI가 주도하는 구인구직 마켓플레이스에서는 커리어 코치와 리크루터의 역할을 하는 두 개의 AI 개인 비서가 백엔드에서 구직자와 구인 기업을 지능적으로 매칭할 거라고 봤고요. 또 로젠버그는 로블록스 같은 플랫폼에서는 크리에이터와 소비자가 각각의 AI 비서를 통해 만나서 더 많은 네트워크를 구축할 거라고 했어요.
더불어 세스 로젠버그는 이곳이 1) 참여자들로부터 고유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2) AI가 공급과 수요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두 요소를 보완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특징을 지닌다고 정의했어요.
샘 레신은 이에 대해, AI 우선 네트워크와 마켓플레이스가 그저 기존 플랫폼의 레이어일 뿐이며 새롭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온라인 부동산 앱인 ‘질로우(Zillow)’에 있는 AI 챗봇을 예로 들었어요.
이 챗봇은 다중 리스팅 서비스(MLS)나 오픈 데이터 소스로 작동되는 레이어로서, 사용자가 원하는 유형의 집을 알려주면 브로커와 협상을 합니다. 샘 레신은 이때 챗봇이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질로우 플랫폼의 연장선상일뿐 새로운 시각에서 나온 제품이 아니라고 말하죠.
*참고: MLS는 부동산 중개인 그룹이 설정한 마케팅 데이터베이스입니다. 판매용 부동산에 대해 정확하고 구조화된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 구축됩니다.
둘째, AI 기반 신개념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AI가 플랫폼 전환을 일으켜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을 전반적으로 다시 정의할 거라고 합니다.
그는 자체 구축한 AI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예시로 AI 이메일 보안 솔루션 ‘앱노말 시큐리티(Abnormal Security)’를 들었는데요.
이 스타트업은 과거에 이메일에 포함된 링크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분석하는 간단한 솔루션을 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메일 내용 중에 악의적인 공격자가 있는지, 이메일 발송자가 사용자의 지인을 사칭하고 있지는 않은지 AI로 감지하는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앱노말 시큐리티는 창업한 지 4~5년 만에 ARR(연간 반복 매출) 1억 달러(약 1500억 원)를 올리며 기업가치 200억 달러(28조 5000억 원)를 인정받고 있어요.
그러나 샘 레신은 AI 스타트업들의 제품이 거대 IT 기업들에게 압살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레신은 현실적으로 기존의 거대 IT 기업들이 고객 네트워크를 더 풍부하게 보유했고, AI를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을 때 더 광범위하게 유통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의 제품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시장에 침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AI를 활용한 어도비(Adobe)를 만들었다며, ‘AI 스타트업’이라고 주장하는 스타트업 대표 수천 명이 피칭을 했는데 어도비에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서 보여줬을 뿐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했죠.
레신의 관점에서 이들은 디자인 패키지 소프트웨어에서 온라인 솔루션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고, 대기업들은 작정하면 이 작업을 쉽게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AI 스타트업들이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특수목적 서비스를 위한 코파일럿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코파일럿은 틈새 영역 또는 전문화된 영역에서 지식 노동을 도와주는 AI 도구입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여기 높은 수준의 AI가 필요하다기보다 지금 사람의 업무 대부분을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도구로서 코파일럿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그리고 여러 시나리오 중 심리적인 역할은 사람이 전담하고 코파일럿은 일을 대규모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산운용가의 경우, 자산을 관리하는 데 있어 대세와 달리 결정을 해야할 때도 있기 때문에 인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한편, AI가 나머지 일을 자동화해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수백, 수천 명의 고객을 확보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AI를 활용한 개인 트레이너, 개인 영양사, 개인 변호사 등이 10배 넘는 효용을 만들고 20배 넘는 수요를 창출할 거라고 내다봐요.
그러나 샘 레신은 사람들의 니즈와 수요가 명확지 않기 때문에 코파일럿을 당분간 출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레신이 보기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에이전트에겐 뉘앙스가 정말 중요한데, 현재 AI로 코파일럿을 만든다는 사람의 99.9%가 이런 뉘앙스를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해요.
그는 변호사 관련 업무를 예로 들었습니다. 법률 문제의 경우 사용자가 사람을 탓하고 싶은 마음과 제3자에게 책임을 위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AI 변호사는 이를 단순히 일처리로 보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비서 업무의 경우, 사람이 실수를 하면 인간관계 때문에 ‘용서’를 할 수가 있는데요. AI 비서가 실수할 때는,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야할 기계가 그렇지 못하니 사용자들이 고객경험을 2배로 형편 없게 느낄 거라고 샘 레신은 주장합니다.
쟁점 2: AI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큰 시장을 열 것이다?
앞서 AI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것인지 여부에 관해 세스 로젠버그와 샘 레신이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두 VC는 AI 스타트업이 과연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특히 기업 가치가 수천억 달러(약 142조 5000억 원)인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생산성 및 협업 스타트업이어서, 그들은 해당 분야에 AI가 도입된 비즈니스 위주로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VC로서의 역할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세스 로젠버그는 VC로서 당연히 AI 스타트업 중 제품을 잘 만들고, 추후 100억(약 14조 원) 달러~500억(약 70조 원)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아웃라이어(outlier)를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참고: 아웃라이어는 보통 관측된 데이터의 범위에서 많이 벗어난 값을 말합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말콤 글래드웰은 (사람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표현할 때) 아웃라이어를,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 성공을 거둔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반면, 샘 레신은 AI 애플리케이션이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기보다는, 지금으로서는 기존 질서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VC로서 투자 시장 전체에서 봤을 때 여기에 지나치게 투자금이 몰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우선 세스 로젠버그가 시장을 큰 그림에서 보며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며, 그 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제품을 찾아가는 것이 맞다며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AI 영업 생산성 소프트웨어 ‘톰(Tome)’의 성과를 소개했어요.
(출시 당시를 떠올려보면) 2020년 초, 직장에서 영업사원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을 때 서로 가볍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툴이 없었다고 해요. 파워포인트는 업무중심적이고 부담스러웠고 비동기화된 툴이었고, 슬랙은 실시간이었지만 앱 안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할 수는 없는 공간이었다고 하죠.
반면 톰은 AI로 이를 가능케 했고, 따라서 세스 로젠버그는 AI가 ‘일하는 방식’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봐요.
샘 레신의 말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톰이 이미 인프라를 구축했고, AI를 그 위에 잘 얹었기 때문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톰에게 AI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여러 계기 중 하나일 뿐이고, 이 스타트업은 AI가 아니었더라도 뛰어난 역량으로 성공했을 거라고 주장해요.
그러면서 그는 각각의 스타트업 역량보다는 시장 전체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완전히 초기인 AI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들에게 투자하고 해당 스타트업들이 수십, 수백억 달러 가치로 성장하리라고 기대하는 요즘 VC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어요.
다음으로 그들은 기존 거대 IT 기업과 AI 스타트업들과의 관계성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위 주제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출시한 생산성 소프트웨어의 강점이자 약점이 사용자 대부분이 해당 솔루션을 어떻게 쓰는지 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기반으로 엄청난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제품을 혁신하려 하지 않고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로젠버그 입장에서는 이들 덕분에 새로운 AI 스타트업들이 등장할 공간이 생겼다고 볼 수 있죠.
샘 레신은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나 어도비가 빠르게 온라인 생산성 제품을 출시하지 못해 피그마에게 기회가 갔다며 세스 로젠버그의 말을 일부 인정했어요.
그러나 이는 세분화된 시장일 뿐이라며, 엔터프라이즈 클라이언트들의 특징 자체가 새로운 제품에 열광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샘 레신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사용자들은 어쨌든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제품을 쓴다. AI가 적용됐든, 되지 않았든 기존에 락인된 제품을 써야 한다. 구글 G-Suite을 보자. 여기 임베디드된 솔루션들의 경우 어찌됐든 사용된다는 것을 아니까 이름조차 따로 만들지 않고 ‘문서(Docs)’, ‘슬라이드(Slide)’로 정해버렸다.”
다시 말해, 그는 클라우드든, 모바일이든, AI든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시장을 점령했고 사용자들 역시 쓰던 제품을 쓰고 싶어한다고 주장해요.
세스 로젠버그는 여기 다시 반박하며 프로슈머와 크리에이터 시장에서는 스타트업들이 AI로 생산성 및 협업 분야에서 더 많은 유즈케이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샘 레신은 이에 대해서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AI 툴을 아예 만들 수 없다면 동의하겠지만 그들도 쉽게 빌드할 수 있다고 다시 반박했어요. 그는 대기업들의 제품 자체는 스타트업들의 제품보다 품질이 낮을 수 있지만, 유통력은 그와 별개로 강력하기 때문에 어쨌든 사용자를 더 많이 확보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세스 로젠버그는 여전히 제품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AI가 제품의 주요 기능으로 자리잡아야 하고, 지금의 AI 네이티브 앱이 피그마 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수백, 수천억 달러 기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면서요.
나아가 그는 AI 제품이 새로운 데이터 세트와 네트워크를 열 수 있다면 기존 기업과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바일 시대 우버가 GPS 기술과,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예시를 들었어요.
쟁점 3: AI가 근본을 바꾸는 기술 트렌드로서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트업을 배출할까?
대체로 기술 및 플랫폼의 변천사를 PC 시대 → 인터넷 시대 → 모바일 시대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PC 시대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했고, 둘다 현재 시가총액이 3조 달러(약 4280조 원)대입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구글, 메타, 아마존이 탄생했고 모두 시가총액이 약 1조 달러(약 1420조 원)대입니다. 또 이들은 오라클 같은 기존 데이터베이스 기업에게도 더 큰 이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모바일 시대에 관해서는 샘 레신과 세스 로젠버그의 생각이 달랐어요.
그래서 그들은 모바일 시대의 우버와 AI 시대를 비교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샘 레신은 모바일이 정말 획기적인 기술의 전환이었는지 의심합니다. 그는 만약 정말 그랬다면 이전처럼 대단한 회사들이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봐요. 대신 기존 PC 시대, 인터넷 시대 생긴 회사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버는 모바일 시대에 새로 생긴 회사가 확실하지만 시가총액 900억 달러(약 128조 원)면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VC 투자금이 들어갔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크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세스 로젠버그는 모바일이 주요 기술 변화고 AI도 마찬가지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우버가 모바일 기술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와 마켓플레이스를 열었다고 보고, AI도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는 “AI 시대의 우버를 찾고 있다. 단순한 UI 변화와 다르게, AI 스타트업들이 기존의 기업과는 다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샘 레신은 우버가 비효율적인 투자처였다고 합니다. 그는 우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서 시장 가치도 따라 오른 것이라며, 이때문에 당시 VC 모두 경쟁적으로 우버에 투자했고 기술을 알던 사람들은 이렇게 무임승차하는 투자자들에게 짜증을 냈다고 회고했어요.
더불어 그는 지금 AI 스타트업을 향한 투자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VC들이 이렇게 AI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자하다가는 언젠가 총 투자 회수액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렇다면, AI 시대에 과연 우버만큼 큰, 혹은 우버보다 큰 스타트업이 탄생할까요?
세스 로젠버그는 AI 스타트업들이 기존 IT 대기업과 경쟁할 필요 없이, 새로운 경로와 채널을 통해 일반 소비자와 엔터프라이즈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AI 마켓플레이스나 AI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와 인터랙션에서 데이터를 추출해서, 기존 제품을 훨씬 더 낫게 빌드함으로써 성공적인 AI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요. 또 AI 제품 사용자 기반을 활용해 매칭 알고리듬을 개발해서 과거에 없던 시장을 열 수도 있다고 예견하고요.
샘 레신은 지금의 AI 시장은 이미 플랫폼을 보유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시장이라고 봅니다.
또한 그는 오픈AI 역시 샘 알트만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창업자이자 CEO고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확보했으며 컴퓨팅 파워 등 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죠. 그리고 오픈AI의 성공은 곧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존 기업들의 이득이기도 하고요.
대신 그는 1인 창업가나 소규모 팀이 VC 투자를 많이 받지 않고 AI를 활용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여서 성공을 거두는 횟수가 늘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쟁점 4: AI 스타트업에 시드 투자를 할 만 한가?
세스 로젠버그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수백, 수천억 달러까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AI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AI 스타트업에 시드 투자를 해야만 한다고 보고 있어요. AI를 점점 잘 사용하는 회사, AI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여는 스타트업에 모두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는 ‘캐릭터 AI(Character AI)’를 그 예시로 들었어요. 수천만 명의 사용자가 이 회사의 새로운 인터랙션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며 앞으로 캐릭터AI가 심리 치료 상담사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어요. 물론 버전을 개선하면서 사용자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해서 시간이 지나도 시장에서 방어할 수 있는(defensibility) 비즈니스를 구축해야겠지만요.
샘 레신은 여전히 AI 스타트업에는 시드 투자를 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는 VC들이 AI 투자에 지나치게 많이 몰리고 있으며, 기술 및 제품의 성숙도를 생각했을 때 이렇게 많은 투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래서 지금은 AI에 관해 학습한다고 생각하며 AI 스타트업들에게 시리즈 A, B 투자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캐릭터AI가 큰 규모의 실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에도 사람들이 외로우니까 사용자로서 인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서 가볍게 교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새롭지 않다고 받아쳤습니다.
또 세스 로젠버그가 캐릭터AI의 ‘가능성’으로 언급한 내용들에 대해서 샘 레신은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의 스타트업이라면 이미 방어력, 가능성, 비즈니스 모델 등을 내재적으로 구축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스 로젠버그는 이에 대해, 여전히 많은 AI 스타트업들이 기존 IT 대기업 제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교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새로운 네트워크로 향하는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어떤 창업자가 제1원칙(first principle)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다른 네트워크와 합친다면, 그리고 이를 초기부터 설정한 방어가능성과 비즈니스 모델에 내재해서 빌드한다면, 분명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고: 제1원칙이란 문제나 상황을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요소로 분해한 후, 그 요소들로부터 새로운 해결책을 구축해 나가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는 기존의 관행이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중점을 둡니다.
반면 샘 레신은 AI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니고 모바일 시대에 나온 제품들을 조금 더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스테로이드제 같은 기술이라고 보기 때문에 모바일을 향한 투자가 더 활발해지는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훌륭한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꼭 새로운 스타트업을 빌드할 기회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여기까지!
AI 스타트업 투자에 관한 VC들의 끝장 토론을 정리했습니다. 지금의 AI 투자 시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고 다채로운 시각도 살펴볼 수 있는 토론이었던 것 같아요.
세스 로젠버그는 VC로서 AI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특히 3개의 부문에서 큰 규모의 AI 스타트업들이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반면, 샘 레신은 시장을 큰 그림에서 봤을 때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기존 플랫폼에 AI 레이어를 더한 제품을 만들 뿐이기 때문에 수백억, 수천억 달러 규모는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보다 1인 창업가, 소규모 팀이 AI를 활용해 효율성을 크게 높여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봤고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누가 맞다, 틀리다로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보다, AI 시대 투자 시장에서 오고 가는 심도 있는 대화에서 여러분만의 의견을 만들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 장혜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