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누군가도 가지고 있다’
‘광범위하게 리서치하고 송곳처럼 개발하라’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한동안 위와 같은 말이 말이 정석처럼 받아들여졌어요. 소위 ‘린스타트업’이라 불리는 방법론이 일환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당신이 만들려는 아이템은, 누군가가 레고 블록처럼 잘 조립해 내일 출시할 수 있다’는 말이 힘을 얻고 있거든요. 혹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송곳처럼 리서치하고 오픈 소스와 AI의 힘을 빌려 넓게 개발하라’는 말이 많은 분들의 공감을 받습니다.
린스타트업, 애자일 모델, MVP(최소기능제품)로 대변되던 스타트업 씬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이제 스타트업들이 우직하고 신속하게 실행만 해서는 혁신을 만들기 어려운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도 스타트업들이 일반적으로 적용했던 방법론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 하며,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도 그에 따라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아티클들을 내놓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런 트렌드가 왜 나타났는지, 그럼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변화를 준비하면 좋을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유익하게 읽어주시기를 바라요!
린스타트업은 ‘왜’ 변해야 할까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한창 각광 받을 때 창업자들은 대부분 ‘린스타트업 방법론’에 따라 투자를 받았고 전략을 짰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스타트업에게 개발 리소스가 가장 비싼 자원이었습니다.
2) 스타트업이 시장 분석을 완벽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험하면서 방향을 찾아나가야 했습니다.
이때 주목을 받은 개념이 ‘최소 기능 제품(이하 MVP, Minimum Viable Product)’입니다. MVP는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최소한의 기능만을 구현한 제품인데요.
스타트업들은 이를 빠르게 내놓아서 시장을 선점하고 시장의 반응을 보며 제품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실행의 묘가 ‘생명’이라고 여겼어요. 그리고 애자일 모델’ 통해 스타트업이 가진 최소한의 리소스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봤어요.
반면, 지금은 시장 분석의 경우 소셜 미디어, 뉴스, 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 리서치 서비스(딥서치(Deepsearch) 등), 소셜 미디어, 뉴스 등을 활용하면 몇 시간 안에 완성된 보고서를 만들 수 있어요.
또 리소스 측면에서도 오픈 소스 덕분에 백지에서 개발을 시작할 필요가 없게 됐고, 심지어 오픈 소스를 잘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양질의 클라우드 개발 툴들이 나왔죠. 스타트업들이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서 프로덕트를 완성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에요.
따라서 시작부터 완벽한 ‘최소 시장성 제품(이하 MMP, Minimum Marketable Product)’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MMP는 MVP와 달리 기능을 제한하지 않고, 처음부터 아주 유려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요. 그리고 MMP는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거나 얼리 어답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료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준비가 된 제품이에요.
다시 말해, 스타트업들에게 도리어 ‘빨리 실행했다가 되돌아오려면 오래 걸린다는 리스크’가 커졌고, 고객들이 구매 욕구를 느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한편, 스타트업들은 업계 외부에서도 큰 변화를 맞고 있어요. 팬데믹 이후 반세계화의 물결이 가속화되고 있어요. 세계은행에 따르면 20년 전보다 새로운 무역협정에 서명한 국가 수가 60% 줄었다고 해요. 관세도 갈수록 높게 매기는 경향이 늘어났고요. 더불어 각종 전쟁의 여파로 각국이 안보와 자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에 따라 스타트업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어요.
1) 정부가 스타트업보다 든든한 공급망을 확보하길 원해요. 따라서 거대 IT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더 많이 주려고 해요.
2)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고 무역을 제한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을 강화하는 추세가 강해졌어요.
3) 대세인 AI 기술이 필요로 하는 많은 양의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수익화 가능한 고객 등은 거대 IT 기업들이 보유한 자원이에요. 스타트업은 이를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기존에 스타트업들이 전방위적으로 적용했던 린스타트업 방법론과 전략은 업계 내외부의 변화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적용하는 등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그럼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보았듯이, 스타트업들은 AI의 발전에 따라 기술 불확실성을 예전보다 더 신경써야 하고, 강력해진 규제 환경에 따라 (특히 기술 스타트업은) 반복적인 제품 개발 프로세스보다는 정부의 규제를 준수하고 기술을 인증하는 과정에 대해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어요.
그렇다면 스타트업들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궁금해지기 마련인데요. 관련해서 HBR이 접근 방식 5가지를 제안했어요.
1. 빠른 실행이 아닌 사고 실험을 기반으로 학습합시다
소규모로 대량의 시장 테스트를 반복적으로 빠르게 실행하기보다,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생성하는 서비스 또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실험을 세심하게 계획하는 데 집중하는 일이 스타트업들에게 더 중요해질 겁니다. 일종의 ‘사고 실험’이 필요해진 셈입니다.
즉, 스타트업들은 기존의 과학이론과 문헌도 이용해서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여기서 주요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현장 데이터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기존의 설득력 있는 데이터도 십분 활용해서 전략과 방향성을 구상해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리게티 컴퓨팅(Rigetti Computing)과 같은 양자 컴퓨팅 스타트업은 기존 양자 역학 문헌을 활용해 계산 모델을 검증하는 주요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AI 모델 개발 등 기술적인 불확실성을 내재한 아이템의 경우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어요.
2. AI 및 디지털 도구로 학습을 효율화합시다
요즘 들어, 사고 실험을 기반으로 학습할 때 필요한 도구들도 예전보다 더 고도화 됐어요. AI와 과학, 디지털 도구의 발전 덕분인데요. 핵 에너지 관련 스타트업 테라파워(Terrapower)를 예로 들 수 있어요. 테라파워는 사용 후 원자로 연료를 재활용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을 제공하려는 스타트업이에요.
처음에는 시험용 원자로를 만드는 데 드는 상당한 비용과 잠재적인 리스크 때문에 테라파워의 미션이 불가능해 보였어요. 하지만 테라파워의 엔지니어들은 슈퍼컴퓨터의 시뮬레이션을 활용해서 자사 솔루션의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컴퓨터를 활용한 사고 실험 접근법을 통해, 실제 물리적 실험을 하기 전,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전에 스타트업으로서 잠재력을 보였고요. 빌 게이츠 등 초기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었어요.
3. 리소스 효율화로 작은 규모를 유지합시다
요즘 스타트업들은 AI, 분석, 자동화 기술 등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서 개발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팀의 규모를 작게 유지하면서 효과적으로 비즈니스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리테일 분석 스타트업인 ‘트렌달리틱스(Trendalytics)’는 11명의 구성원이 AI를 사용하여 소비자 트렌드를 추적하고 가격 책정 전략을 최적화하고 있어요. 트렌달리틱스는 AI를 활용해 소규모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경쟁사와 비교해서 가격을 조정하고 차별화 포인트를 잡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요. 감성 분석(sentiment analytics)를 활용해 소셜 미디어와 후기들을 조사해서 소규모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클라이언트들에게 관련 트렌드를 알려줘요.
이제까지 뛰어난 인재는 대기업만의 전유물로 여겨졌어요.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리소스는 적게 쓰면서 시장 분석은 제대로 해서 시장에 소구할만한 MMP를 출시할 수 있게 됐어요. 따라서 이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어요.
4. MMP로 투자를 받읍시다
과거에는 스타트업들이 이렇다할 제품이 없지만 훌륭한 아이디어만 있어도, 또는 MVP만 만들어도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후 실행을 빠르게 해서 아이디어를 구현하면 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스타트업들이 실행을 통해 수요를 측정하고 실제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한 MMP를 만들어야만 합격하게 되었어요.
특히 와이콤비네이터 2025년 겨울 배치(YC W25) 스타트업들을 보면 다들 MMP로 VC들을 설득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리볼트(Rebolt)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레스토랑 관리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인데요.
리볼트는 주방 직원이 배달 전에 주문을 사진으로 찍고 AI가 이미지를 실제 주문과 매칭해서 사기성 환불 청구를 잡아내는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이미 97개 이상의 레스토랑이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식당의 이메일, 전화 통화, 스프레드시트와 같은 반복적인 작업을 간소화하여 주간 업무량을 줄이는 효과도 보고 있어요.
리볼트는 선행 조사와 실행을 통해 명확한 시장 수요를 확인했어요. 실제로 식당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죠. 덕분에 그들은 YC 배치에 선발되었고요.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지금의 VC들은 초기 팀이라도 강력한 MMP를 보유한 팀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5. 개념 증명(PoC)을 수행합시다
MMP를 잘 만들기 위해 개념 증명(PoC)을 수행할 수 있어요. PoC는 신규 개발 제품, 서비스, 솔루션 등의 이론이나 아이디어가 실제 세계에서도 기술적으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 테스트입니다.
PoC의 경우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일부 차용하지만 기술적인 구현을 목표로, 실험을 빠르게 소규모로 반복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예를 들어 로봇 회사들은 3D 프린트를 활용해 조인트 메커니즘 같은 설계를 빠르게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어요. 이렇게 신속하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실제 제조 비용을 줄이고 타임라인을 효율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MMP를 만드는 과정에서 PoC를 수행하면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신뢰를 구축할 수 있고 미리 상황을 예측하게 되니 대규모로 기술을 구현했을 때의 리스크를 낮출 수도 있어요.
6.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규제를 파악합시다
과거에는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규제의 회색지대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주장하며 스타트업을 만들고 운영하기가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IT 기업을 향한 규제가 강력해졌고 딥테크 스타트업이 상대적으로 투자를 더 잘 받으며 성과를 잘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규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준수하는 일은 스타트업에게 필수가 됐어요.
예를 들어 항공우주 스타트업은 최첨단 재료 과학 시설을 보유한 대학과 협력해 제품 개발을 진행할 수 있어요. 또 의료기기 회사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 전문가와 협의하는 등 처음부터 규제를 탐색해서 관련 표준을 준수하면 재설계를 방지해서 비용을 줄이고 출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요.
항공우주 스타트업 스페이스X(SpaceX)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협력해서 연구 시설과 전문 지식을 활용했어요. 덕분에 팔콘(Falcon) 로켓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었고요. 또 유전자 편집을 연구하는 스타트업 에디타스 메디슨(Editas Medicine)은 기존 제약 회사와 협력해 복잡한 임상 시험 프로세스를 파악해 문제 없이 진행했고 연구 승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7. ‘투명성을 강조하는 문화’를 정착시킵시다
스타트업들은 앞으로 MMP를 내놓으면서 투자를 모색하고 시장에서 실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게 될 텐데요. 그러면서 기술과 실제 구현 사이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투명성과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을 중시하는 내부 문화를 구축해야 할 것으로 예상해요.
오픈AI의 경우 초기 챗GPT를 개발하며 직면한 과제와 실패를 포함해 관련된 자세한 연구 논문을 대중에게 공개한 바 있어요. 그러면서 버전을 업그레이드했고 엔터프라이즈용 솔루션을 개발했는데요. 이러한 개방적인 문화는 모든 팀원이 같은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잠재적인 문제를 애초에 식별해서 더 늦지 않게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까지 스타트업 방법론 변화의 이유와 접근 방법을 알아봤어요. 물론 스타트업은 여전히 대기업에 비해 많은 이점을 갖고 있어요. 스타트업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인재를 유치하고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지녔어요. 그래서 업계 내외부의 큰 변화 속에서도 단지, 그들이 대응해야 하는 불확실성의 성질이 달라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이 불확실성을 마주하기 위해 이제까지 마치 바이블 같았던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시대에 발맞춰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어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무작정 실행해보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어떤 과정과 전략에서는 더 날카롭게 시장을 분석하고 넓게 개발하는 시각도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은 스타트업들에게 이러한 현명한 판단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변혁의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 Can Startups Thrive in an Age of AI?
- Do Lean Startup Methods Work for Deep Tech?
- How AI brings corporate might to small teams, reshaping business for all
- What is a Minimum Marketable Product in Agile Product Development?
- 10 startups to watch from Y Combinator’s W25 Demo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