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의 억만장자 창업자 손정의 회장은 격동의 시대를 몸소 겪어냈습니다. 그는 근 수십년 간 IT 비즈니스 역사의 주요 순간들을 전부 마주했어요.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 약 50년의 투자 경력에서 두 번 이상 파멸에 가까운 좌절을 경험했고, 그 이상의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만큼 여러 번의 성공도 거두었고요.
그래서 업계의 많은 이들이 경외 반, 의구심 반의 눈초리로 손정의 회장을 바라봅니다. 실제로 그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기업가이자 투자자로서, IT 비전가이면서도 도박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듣고 있어요. 야후나 알리바바 초기에 투자해 큰 부를 축적한 한편, 위워크에 베팅했다가 큰 낭패를 보는 등 그의 투자사에는 굴곡이 가득하죠.
2024년 10월, 전 파이낸셜타임즈 편집장 라이오넬 바버(Lionel Barber)가 영문으로는 최초로 그의 투자 인생을 다룬 전기 ‘Gambling Man(도박꾼)’을 출간했어요. 라이오넬 바버는 책의 출간과 함께 HBR에 ‘손정의 회장의 성공과 실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8가지(8 Lessons from the Career of Softbank’s Masayoshi Son)’라는 아티클을 기고했는데요. 오늘은 이 내용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려고 해요. 유익하게 읽어주시기를 바라요!
1. 역경을 기회로 바꾸기
손정의 회장은 1957년 일본 규슈 섬의 판잣집 마을 외곽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 가명으로 살았던 재일조선인 가정(재일교포)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밀수업자, 돼지 사육업자, 고리대금업자, 파친코 도박장 주인이었어요.
손정의 회장의 어린 시절은 재일교포 3세를 향한 차별, 어려운 가정 상황 등으로 녹록지 않았지만, 그는 아버지를 보며 돈을 버는 법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16세에 도박계에 뛰어드는 대신 일본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로 가서 공부를 했어요. 귀국 후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라는 회사를 차려 소프트웨어 유통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손정의 회장은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이런 어려움들을 딛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갔고요. 차별과 소외를 발판 삼아 오히려 시장에서 자신의 포지셔닝을 확고히 했습니다.
2. 집요함을 발휘하기
손정의 회장의 경력은 끊임없이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2000년대 닷컴 버블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어요. 소프트뱅크 주가가 폭락했던 2000년 당시 590억 달러(약 86조 원) 이상을 잃었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일본에서 광대역 및 모바일 인터넷으로 사업을 전환해서 소프트뱅크를 계속 운영했어요. 이후 2010년대 소프트뱅크 지분을 통해 미국의 이동통신 사업자 스프린트(Sprint)를 76% 인수했고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장기간 해당 인수 건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소프트뱅크는 결국 2020년 260억 달러(약 38조 원)에 스프린트의 모든 주식을 인수했고 합병을 완료했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이렇게 한번 겨냥한 목표점을 웬만하면 놓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예시로는 그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를 직접 찾아가서 아이폰 출시 전에 일본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청한 사례가 있어요. 애플은 2005년 이에 동의했고, 덕분에 소프트뱅크는 당시 강력했던 NTT도코모(NTT Docomo)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습니다.
오픈AI 투자 건도 손정의 회장의 집요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예요. 소프트뱅크는 최근 오픈AI에 최대 400억 달러(약 57조 5000억 원)를 독점 투자할 수 있는 라운드를 진행하기로 했는데요. 사실 손정의 회장은 2019년쯤 오픈AI에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이야기했다가 샘 알트만 대표에게 거절당한 적이 있었죠. 그러나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번 기회를 잡아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3. 동서양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하기
손정의 회장의 핵심 스킬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혁신적인 기술을 발명했거나 소유하지 못했어요. 또 벤처캐피털, 사모펀드를 비롯한 미국 자본 시장의 지원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기업가로서 수십 년간 동서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어요. 덕분에 손정의 회장은 기술 생태계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 됐어요.
특히 그는 미국 기업들이 일본과 중국의 대중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1980년대 손정의 회장을 처음 만난 후 그를 “문화 통역사”’로 묘사했고 나아가 “(일본의) 내부자였지만 외부자로서 그는 두 입장과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하기가 수월했다”고 언급했어요.
손정의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도 유망한 젊은이와 자산에 투자를 했는데요. 그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례가 전자상거래 거대 기업 알리바바였습니다. 그는 2000년 알리바바 설립 당시 2,000만 달러(약 291억 원)를 과감히 투자했어요. 알리바바는 이후 몸집을 크게 불려 글로벌 무역 플랫폼이 됐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된 지금도 손정의 회장은 새로운 지정학적 지형에 적응하며 동서양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게 “미국 경제에 1000억 달러(약 145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고요.
또 그가 오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아시아 제조 기술과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영국 칩 회사 ARM의 설계 전문성을 결합해 엔비디아의 생산량에 맞먹는 AI 칩을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4. 늘 멘토와 멘티를 모색하기
손정의 회장은 일본에서 ‘나이 많은 기업가의 취향 저격자(the old man killer)’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어요. 그가 젊었을 때 발휘한 자신감 있고 당찬 매력이 여러 베테랑 사업가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덴 후지타(Den Fujita)는 그 중 대표격인 인물이에요. 그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Doublas MacArthur) 본부에서 일본어 통역가를 맡았고요. 이후 일본에서 최초로 맥도날드 프랜차이즈를 열었습니다. 덴 후지타는 16세의 소년 손정의에게 “전도유망한 컴퓨터 산업으로 진출해야 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손정의 회장은 이러한 멘토의 말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손정의 회장의 또 다른 멘토는 타다시 사사키(Tadashi Sasaki)였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일본 컴퓨터 과학자죠. 타다시 사사키는 손정의 회장이 1981년 첫 사업을 시작할 때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해 주겠다고 제안한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덕분에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시작할 수 있었죠.
이후 손정의 회장은 그 자신이 사우디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의 IT 기술 멘토가 됐습니다. 두 사람은 2016년 도쿄에서 45분 동안 회동했는데요. 손정의 회장은 이때 왕세자가 IT 기술 트렌드에 뒤쳐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정확히 알고, 이를 공략하는 강연을 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에 450억 달러(약 65조 4000억 원)를 투자받을 수 있었고요. 두 사람은 지금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요.
5. (과할 정도로) 크게 베팅하기
손정의 회장은 어떤 거래에서든, 어떻게 보면 자신을 좀 부풀려 드러내는 듯한 투자 과정과 금액을 제시하는 투자자입니다. 그는 투자금에 관한 논의를 할 때 무조건 100만 달러(약 14억 5000만 원)에서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사이로만 이야기하고요. 때로는 다른 투자자들과 금융 거래를 할 때나 인재를 채용할 때 자기 앞에 있는 냅킨에 숫자 0 몇 개를 적는 방식으로 ‘냅킨 계약서’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자신감의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과시로도 보일 수 있죠. 손정의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창업자와 투자자를 도쿄 시내와 근교에 있는 2곳의 저택에 초대하거나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있는 자신의 궁전 같은 집에 데려가기도 해요. 한 손님은 (집 세 채를 합쳤고, 지하에는 거대한 인공 골프장이 있는) 도쿄 시내의 저택에 방문하고는 “마치 브루스 웨인의 저택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세계에서 가장 빚이 많은 회사 10위 안에 꾸준히 들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손정의 회장은 대부분 과도하다고 생각할 만한 방식과 금액으로, 돈을 빌려서라도 현금을 지불하는 투자 방법을 선호해요. 그는 장기적으로 이를 합리적인 베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가 2016년 영국 칩 설계사 ARM을 320억 달러(약 46조 5000억 원)로 인수한 것이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현재 ARM의 가치는 1300억 달러(약 189조 원)가 됐어요.
6. 애정보다 사업 타당성을 우선시하기
이번에는 손정의 회장의 실패에서 배울 차례입니다. 그는 야후, 알리바바, Arm 등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대로 실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 사례의 대부분은 손정의 회장이 젊은 스타트업 CEO들에게 ‘혹했기’ 때문이었어요.
손정의 회장은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 위워크의 애덤 노이만(Adam Neumann), 인도의 호텔 스타트업 OYO의 리테쉬 아가르왈(Ritesh Agarwal) 등 나이가 어리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창업가, 대표들에게 쉽게 매료됐어요. 그래서 그는 그들의 전략과 리더십에 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적절히 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어요.
예컨대 위워크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고, 소프트뱅크는 2017년부터 파산까지 이 스타트업에 160억 달러(약 23조 원)를 쏟아부었습니다. 여기에는 파산 신청 며칠 전 채권자들에게 지급한 15억 달러의 현금도 포함됐어요.
또한 OYO는 소프트뱅크에게 15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자 받았지만,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실패했어요. 이때문에 2019년에는 전년 대비 6배의 손실(3억 3500만 달러, 약 4870억 원)을 냈고요. 손정의 회장은 OYO의 대표가 손실을 메우는 과정에서 20억 달러를 빌릴 때 개인적으로 신용을 보증하기도 했어요.
미디어에서 그를 ‘창업자 증후군에 걸렸다’라고 묘사한 이유는 손정의 회장이 이렇게 쉽게 스타트업 CEO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애정을 줘서, 그들에 대한 타당한 검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손정의 회장의 고문을 맡았던 론 피셔(Ron Fisher)는 심지어 “그와 함께 일하는 ‘서커스’에서는 성공 뿐만 아니라 실패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 서커스에 올 때는 반드시 삽을 들고 와야 한다. 코끼리가 엉망으로 만든 마을을 떠날 때 그 뒤를 치울 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비유했어요.
7. 회사 규모가 아닌 리더십에 맞는 인재 영입하기
소프트뱅크가 커지면서 손정의 회장은 야심차고, 고학력이며, 돈에 민감한 사람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에는 해외 거주자를 포함해 글로벌 IT 업계에서 한 가닥한다는 인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특히 도이체은행 네트워크로 인재들을 많이 채용했죠.
그들은 일본인이 다수였던 소프트뱅크의 문화를 빠르게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갈등은 불가피해졌죠. 결국 이 갈등은 2020년 두 임원진의 진흙탕 싸움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어요. 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대표였던 라지브 미스라(Rajeev Misra)와 전 소프트뱅크 COO이자 전 스프린트 대표였던 마르셀로 클로어(Marcelo Claure)가 충돌했기 때문이었는데요.
마르셀로 클로어는 한때 손정의 회장의 오른팔로 불렸으며 위워크, ARM처럼 소프트뱅크의 후기 스타트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했어요. 반면 라지브 미스라는 천 억 달러(약 145조 원)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총괄했습니다. 여기에는 주로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 많았고요. 둘 사이에는 처음부터 갈등이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힘겨루기에서 라지브 미스라가 승기를 잡았어요. 클로어와 일하던 구성원들이 미스라에게 보고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누가 이겼든 결국 손정의 회장에게는 악재였는데요. 번스타임앤코퍼레이션의 애널리스트 크리스 레인(Chris Lane)에 따르면 손정의 회장은 평소 포트폴리오 스타트업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요. 두 임원이 이렇게 치고박고 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둘을 중재할 시간이 없었고 내심 클로어가 알아서 잘 해주길 바랐다고 하죠(손정의 회장은 경험 많은 클로어가 비전펀드의 스타트업 포트폴리오들을 도와주길 바란 것 같아요).
하지만 정작 손정의 회장은 둘 중 어느 쪽에도 힘을 싣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당시 그는 이것이 적절한 리더십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여요. 이후 이런 내부 갈등이 외부에 알려진 이후에도 손정의 회장은 실적발표 등 공식석상에서 단 한 번도 이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디어들은 (아무리 바빴어도) 손정의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사태를 이렇게 심각하게 만들지는 말았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8. 나이보다 미래에 집중하기
올해로 67세인 손정의 회장은 여전히 소프트뱅크와 자신을 묶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는 그 역시 후계를 생각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글의 고위 경영진이었던 니케쉬 아로라(Nikesh Arora)를 4년 동안 3억 2000만 달러(약 4648억 원)에 고용해 소프트뱅크를 이끌도록 만들었어요. 하지만 손정의 회장은 그가 소극적으로 투자한다고 불만스러워하며 다시 회사로 돌아왔죠.
손정의 회장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무모한 베팅을 했고 몇 주 만에 수십억 달러를 잃었어요. 이후 그는 소프트뱅크의 최고 재무책임자(CFO)에게 지휘권을 넘기겠다고 선언했고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어요. 업계에서도 파산 전에 그에 관한 전기를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은 다시 한번 미래에 집중했어요. 특히 그가 오랜 열정을 갖고 있던 AI 분야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24년 샘 알트만의 오픈AI에 20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지분을 두 번 투자했고요. 소프트뱅크의 다른 사업들을 매각한 자금을 AI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소프트뱅크가 오픈AI를 위한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AI 인프라 설립 프로젝트 ‘스타게이트(Stargate)’에 최대 5000억 달러(약 727조 7500억 원)를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죠.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손정의 회장은 이렇게 다시금 미래에 집중하며 IT 업계의 주요 AI 투자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손정의 회장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울 점 8가지를 살펴봤어요. 손정의 회장을 향한 다양한 평가가 난무하지만요. 그는 67세의 나이에도 IT 업계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존재감와 경력, 경험을 통해 창업자와 투자자들에게 배울 점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참고
- 8 Lessons from the Career of Softbank’s Masayoshi Son
- SoftBank’s AI bromance
- Masayoshi Son’s Other Big Real Estate Bet Has Some Real Problems
- Rajeev Misra & Marcelo Claure’s power clash at top of Softbank puts Son’s vision in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