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마인드셋 #커리어
회사를 나오면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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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소도시에서 빈집 리노베이션 사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사람이 있습니다. 와타나베 신타로님인데요, '50대에 0에서 시작한다면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되묻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커리어 초기에 저성과자로 평가받던 와타나베님은 상사와 직무 목표를 맞춰가며 고성과자로 거듭납니다.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회사 매출을 2배로 성장시킨 주역이 되었지만, 창업 후에 다시 위기에 마주합니다.

"나만의 콘텐츠" 를 찾아 50대에 과감히 창업에 도전해 현재는 아내와 함께 휴가시에서 코리빙 공간과 커뮤티니를 만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도시에서 본인만의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을 일궈가는 이야기, 함께 보시죠!

 

인터뷰 하이라이트


  • "제가 주목한 부분은 생산성이에요. 한 사람당 생산성을 높이는 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객단가를 높이는 거죠. 단가를 높이는 방법 같은 건 부서 간의 소통이 필수에요."
  • "비즈니스가 되려면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 와서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저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역량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맥락을 가지고 있었어요."
  •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냉정하게 평가를 해봤더니 손해 득실로 따져서 여러 가지 선택을 했을 때는 반드시 실패했어요. 지금까지 여정을 보면 논리적인 로직을 세워서 온 게 아니에요. 상황이 상황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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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신타로 소개


미야자키현 휴가시에서빈집 리노베이션, 샤크&칩스 푸드트럭을 하고 있어요. 어페럴, HR, 건축사무실 등 여러 분야를 거치며 영업, HR과 조직관리의 전문성을 쌓아 휴가시 SurfOffice의 비즈니스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저성과자에서 회사 매출 2배 올린 고성과자로!


Q. 창업 전에는 어떤 커리어를 쌓아오셨나요?

졸업 후 도쿄로 와서 어페럴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기획부터 디자인, 제조 공정 관리까지 당시만 해도 육체노동에 가까운 일이 많았어요. 주말에는 매장에서 프로모션해야 하다 보니 쉴 수가 없는 거죠. 보통 30살이 되어선 커리어를 돌아보게 되잖아요. 몸보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이직을 결심했죠. 이전 회사 경험을 반추해보니 기획이나 영업에는 자신있었어요. 이 두 가지를 접목시킬 일을 찾다가 인재 육성 및 개발 회사 HR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어요.

 

Q. 지금 하고 계신 일과는 다른 일이셨네요. HR 회사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상사와 소통하며 성장하는 법을 배웠어요. 막상 HR 회사에 들어가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인사 평가도 3년 동안 S, A, B, C, D 중에서 C가 나온 거예요. 그러다 부서 이동을 하며 상사와 일하게 됐어요. 상사가 ‘3년 동안 했는데 평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면 맞는 게 아니야’라고 하는 거예요. 역으로 ‘C에서 A, S로 평가를 올리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어봤어요. 영업 능력이 안 돼서 인사 평가가 안 좋은 줄 알았는데 제가 생각한 답이랑 다른 거죠. 영업 능력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기대한 바에 못 미친다고 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지금까지 한 업무를 보고할 때라든지 평소 업무에서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때부터 상사한테 보고 전에 준비를 세밀하게 하고 굉장히 밀도 높게 소통했어요. 이제 그만 소통해도 된다며 인사 평가를 B를 받았죠. 그다음 A를 받기 위해선 어떻게 가야 할 지 물어봤죠.

 

Q. 상사와 함께 직장 안에서 목표를 맞춰가셨네요.

맞아요. 처음에는 막연했는데 목표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도장 깨기식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사 평가가 A를 받았어요. 그렇게 조직 안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운 이후에는 교육 파트로 부서를 옮겨서 교육을 많이 했어요. 새로운 전문 분야를 학습한 후에 대상과 장소를 바꿔가며 가르치는 일이 저에게 잘 맞았어요. 우등생으로 출발하진 못했지만 발전하면서 커리어 패스를 쌓아왔죠.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0에서 다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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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HR분야 있다가하시다가 빈집 리노베이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43세가 됐을 때 커리어 경력도 채웠고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건강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센다이로 내려가게 돼요. 아버지의 중개업을 이어받으려면 경험이 필요한데 그간 쌓아온 경력과는 너무 다른 거죠. 중개업을 잘하기 위해선 집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집 근처에 있는 건축 사무소에 가서 무작정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사장님이 당연히 이상하게 보죠. 왜 여기서 일하려고 하는지, 원하는 게 뭔지 물어봐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가업을 잇기 위해 왔다고요.

 

* 일본에는 공무점이라 하여 한국과는 다른 개념의 건축사무소라고 합니다. 공무점에서는 설계와 디자인을 하는 건축사무소, 공사를 하는 시공업체 역할을 함께 합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영업도 같이 해야 하죠. 주택이 많은 일본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그러더니 사장님이 냉정하게 말해주시더라고요. ‘다 좋은데 너 지금 부동산이나 건축사무소 경력이 없지 않냐. 여기 일하는 사람 모두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들이야. 대학원을 나오건, 박사건 상관없이 여기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된다. 할 수 있겠냐?’고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거기서 일하게 됐어요.

 

Q. 거기서 일은 잘 맞으셨나요?

잘 맞았어요. 4년 동안 일하면서 1000건 정도 프로젝트를 맡아서 했어요. 의뢰가 오면 견적 계산하고 견적을 바탕으로 현장 소장 역할까지 하는 거죠. 천 개 중에 60%는 소장 역할을 했어요.

주요 업무는 영업과 코디네이터 역할이에요. 예를 들어서 오래된 플로어를 새 제품으로 바꾼다든지 아니면 타다미를 드러내고 리모델링을 한다든지 이런 의뢰가 있어요. 그럼 견적을 내고 위탁을 하청업체나 작업자 선정도 하고요.

 

센다이에서 도쿄로, 지금은 휴가시로 이주한 와나타베님

센다이에서 도쿄로, 지금은 휴가시로 이주한 와나타베님

 

Q. 이전 커리어 경험이 도움 되었나요?

엄청 도움 됐죠. 인재 교육 쪽에 있다 보니 여기 업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건축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매뉴얼, 영업을 위한 매뉴얼 두 개를 만들어서 내부 교육을 했죠. 1년 차부터는 영업 실적이 1등이었죠.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영업, 마케팅 부서랑 건축 부서 간에 사이가 안 좋은 거에요.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고 내부 워크샵을 기획해서 부서 팀원끼리 대화를 하도록 만들었어요. 이렇게 소통이 되다 보니 회사 전체적으로 성과도 좋아지는 거죠. 퇴사할 때 회사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했어요. 한 사람의 매출 기여도가 6억에서 15억 수준으로 올라갔죠.

 

Q. 지역 안에서 2배 가까이 성장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제가 주목한 부분은 생산성이에요. 한 사람당 생산성을 높이는 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객단가를 높이는 거죠. 단가를 높이는 방법 같은 건 부서 간의 소통이 필수에요. 원래는 설계팀과 영업팀이 따로 놀던 부분을 개선했죠. 견적을 낼 때 설계팀과 영업팀이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거예요. 어떻게 업셀링을 할 수 있을지요. 단가가 낮은 건도 여러 팀이 함께 고민하 제안을 해서 더 큰 견적으로 따내는 거죠. 이렇게 하다 보니 단가가 상향 평준화됐어요. 

 

Q. 관성적으로 일하던 부분이 있었을텐데요. 다른 팀원의 반감이나 저항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조직을 바꾸려면 두 가지 핵심 키워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세일즈(영업력). 그다음은 조직 개발 능력이에요. 세일즈 같은 경우는 제가 영업을 잘해서 톱 세일즈 맨이 돼버리면 돼요. 예를 들어 외부 컨설턴트가 와서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면 아무도 듣지 않죠. 하지만 제가 하는 말에 따라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일단 영업 실력이 받쳐주니까요. 제가 얘기하면 듣는 사람이 많아지죠. 이렇게 조직 내부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게 첫 번째예요.

그다음엔 팀원이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보통은 영업팀, 설계팀, 마케팅 각 팀에서 각자가 하는 것만 보잖아요.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하면 ‘내가 일하는 게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여기서 했던 업무가 넘어가서 이 팀원한테 이렇게 영향을 주는구나’ 를 파악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요. 그게 매출 성장을 만들고요.

예전 같으면 영업을 해와도 공사 작업자가 지금 바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취소시켜 버려요. 그럼 서로 감정이 상해버리죠. 부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면 오히려 공사하는 팀에서 영업팀한테 먼저 얘기해요. 공사 일정이 이렇게 되지만 여기 일정이 비어 있으니까 이 일정에 맞춰 할 수 있는 안건을 따와달라고 소통하죠.

 

Q.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게 만드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톱다운 방식으로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바텀업으로 팀원이 그 과정을 현장에서 경험하도록 했어요. 개인 역량이 처음엔 낮았지만 점차 개인 역량이 높아지면서 더 큰 안건을 따올 수 있고 객단가가 높아지는 선순환이 되는 거죠.

큰 공사일수록 공정이 복잡하니까 처음에는 갈등이 많았죠.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사람끼리 친해지고 서로 하는 일도 파악하면서 협업 역량을 갖춘 인재들로 거듭나는 거죠.

 

Q. 퇴사하실 때 사장님이 아쉬워했겠어요.

이런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죠. 누가 어떤 식의 흐름을 가지고 어떻게 바꿔 가는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당시에는 사장님도 잘 몰랐어요. 매출은 올라가서 좋은데 왜 그런지 몰랐죠. 사장님이 제가 관두고 나서 제가 했던 방식 덕분에 이렇게 좋아졌다는 걸 나중에 이해하곤 말씀 주셨어요.

저는 한 사람의 능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 내 부서 전체의 퍼포먼스를 향상하는 것에 굉장히 집중해요. 이게 제가 잘하는 능력이기도 하고요.

공무점에서 4년 동안 일했는데 병에 걸렸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됐어요. 건축 영역은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배웠는데 부동산 중개를 막상 못 배우게 된 거죠.

 

나이 50, 절박함으로 다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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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동산업을 이어야 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못 갖춘 거예요. 내가 뭘 해야 할까 생각하던 시점에 창업을 하게 됐죠. 창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비즈니스가 되려면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 와서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저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역량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맥락을 가지고 있었어요. 컨설팅도 했고 조직을 성장시킨 경험이 있으니 긴자에 있는 위워크에 사무실을 차렸어요. 당시 위워크에서는 긴자, 롯본기 등에 위워크 지점에 밋업 행사를 계속 열었어요.

사람들 만나서 뭔가를 해보려고 계속 나갔죠.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도 없고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단한 보스 마냥 계속 활동했죠. 그러다 위워크에서 커뮤니티 빌딩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꽤나 많은 예산이라 맡아서 시작했죠. 돌아보면 컨설턴트라고는 하지만 뭘 하는지 저도 몰랐어요.

 

Q. 도쿄에서 휴가시는 어떻게 오셨나요?

위워크에서 커뮤니티 운영을 한 경력이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제안이 조금씩 들어왔어요. 슬램덩크 배경이기도 한 쇼낭에 있는 코워킹 회사와 일하게 됐어요. 거기서 지금의 아내(당시 여자친구)를 만났죠.

도쿄는 생활비나 임대료가 비싸다 보니 있어 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아내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미야자키로 가고 싶어 했고요. 서핑 매니아거든요. 그렇게 미야자키현 휴가시로 왔어요.

 

Q. 지금의 리노베이션 사업은 휴가시에서 하게 됐나요?

둘 다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휴가시로 왔잖아요. 당시 처절하게 생활했어요. 직장에서 번 돈은 아이들 키우고 명품이나 외제차 등에 소비하며 살다 보니 저축한 게 크게 없는 거죠. 도쿄에서 버는 돈은 그대로 임대료, 생활비로 나갔어요. 1달도 생활하기 힘든 돈으로 시작했어요. 목욕탕 가려면 5천 원이 필요한데 그 돈도 아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죠.

당장 살아남는 게 중요했죠. 마침 코로나 위기로 정부에서 1천만원씩 사람들에게 줬어요. 생활이 힘드니 생활비로 쓸 법 한데 아내가 생활비 하지 말고 빈집을 사자고 했죠. 도쿄에선 불가능하지만 지방 소도시인 여기는 싼 빈집이 많거든요. 한국도 보면 지방에 오래된 모텔 있잖아요. 미야자키에도 장사가 안 돼서 폐허가 된 매물들이 있었어요. 숙박업이 가능한 빈집 매물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심했죠.

 

빈집을 매입해서 리노베이션한 첫 코리빙 공간

빈집을 매입해서 리노베이션한 첫 코리빙 공간

 

Q. 이전 직장 경험이 여기서 도움이 되셨겠어요.

문제가 여기서 생겼죠. 뭘 해야 하는지 지식도 있고 사람을 부릴 수는 있지만 직접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돈이 부족하다 보니 다 제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하나하나 직접 고쳐가며 힘들게 오픈했어요. 공간 운영을 하다 보면 고정비가 있다 보니 슈퍼마켓이나 로컬 샵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했죠. 그리곤 빈 집을 하나 더 샀어요. 처음 산 매물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았어요.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포크레인을 친구한테 빌려 쓰고, 재료비를 아껴가며 수리했어요.

그렇게 두 건을 하며 경험을 쌓긴 했지만 한계를 바로 마주했어요.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서 지점을 늘려도 운영 비용이 낮아지지 않는 거예요. 미야자키현에서 빨래, 청소 대행업체를 찾는 것도 어려워요. 도쿄처럼 수요가 많은 대도시가 아니다 보니 단가도 비싸고요. 운영 수익이 낮고 인력 리소스만 더 들어가는 거죠. 대신 부동산 중개, 푸드트럭 운영을 하며 다른 부수입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비즈니스 구조를 바꿨어요. 얼마 전에 공인중개사 자격을 땄고요.

 

부부가 운영하는 샤크&칩스 푸드트럭

부부가 운영하는 샤크&칩스 푸드트럭

 

Q. 심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겠어요.

네, 아내와 거리를 둔 적도 있어요. 싸울 수밖에 없는 게 여유가 없어지면 현실이거든요. 먹고 사는 문제에서 갈등이 생기면 정말 힘들어요. 일주일 정도 친구 집에 도망간 적도 있어요. 친구 집에 묵으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런 힘든 상황에서 나를 지탱해 주고 내 옆에 있어 주는 여자는 정말 귀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죠. 제가 한 잘못을 얘기하고 ‘지금 이런 상태지만 같이 한번 다시 해보자’고 얘기했죠. 그렇게 관계가 회복됐어요.

엄청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꿈꿀 수 있는 비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내와 그 비전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는 게 버팀목이었어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하나의 믿음 같았죠. 지금은 각자의 꿈이 아니라 같은 선상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기재들이 많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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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분이 그리는 방향이 궁금해요.

아내 꿈이 아티스트와 함께 사는 코리빙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거예요. 그건 나중에 성공한 다음에나 해보자고 얘기했죠. 생각해 보니까 지금 해도 되겠더라고요. 코리빙 공간을 만들기 위해 먼저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커뮤니티 안에서 정보가 오고 가면서 휴가시에서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 제 일로도 연결이 되고요.

향후에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동산 분야에서 조직 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조직을 성장시키는 컨설팅 사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Q. 여러 커리어를 거치고 현재 소도시에서 창업하고 계시잖아요. 이 과정에서 배운 큰 교훈이 있다면요?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냉정하게 평가를 해봤더니 손해 득실로 따져서 여러 가지 선택을 했을 때는 반드시 실패했어요. 지금까지 여정을 보면 논리적인 로직을 세워서 온 게 아니에요. 상황이 상황을 만들었죠. 아내가 미야자키 휴가시 정착하고 싶다고 해서 여기에 살고 있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스킬, 잘하는 것들을 모아보니까 코리빙이었어요. 코리빙 공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해보자고 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고요. 손해 득실보다는 제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분야 맞춰 판단 기준으로 삼고 움직이고 인연을 만들어요. 누군가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휴가시에서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출처: hyuga-news

출처: hyug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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