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신입 VC가 경험한 “대기업 키즈카페 VS 동네 키즈카페"의 숨막히는 생존경쟁

이 글은 [비주류VC의 이상한 뉴스레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하고 솔직한 VC와 스타트업 세계를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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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주류VC (Non-mainstream VC / NMSVC) 입니다.

오늘은 월요일마다 발송드리는 "VC생활 10년만에 로맨틱한 사람이 냉소적인 사람이 된 이야기" 시리즈로 찾아뵙게 되었어요.

목요일에는 제가 관심있는 스타트업 산업의 인터뷰나 좋은 글들을 발송드리고 있사오니 많은 분들께 구독 주소를 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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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열 여섯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요새 정말 많이 쓰는 말인 것 같은데요.

"정말이지 답이 없다."란 말이예요.

요새 같은 불경기에는 스타트업들이 성장은 고사하고 살아남기 위해 바쁠 수 밖에 없어요. 생존이 우선되어야 그 뒤가 있을 것이니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다들 애를 쓰고 있어요.

유동성이 풍부하던 시절에는 몇몇 지표를 가지고 펀딩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VC도 그런 지표만 보고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거든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가 정말 VC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경험한 "답 없는" 이야기예요.

 

2015년 비주류VC가 막 VC를 시작했을 때였어요.

입사했더니 이미 투자를 많이 해놨더라구요.

그 중에서도 특이한 투자건이 하나 보였는데요.

바로 "키즈카페" 였어요.

읭...? VC가 키즈카페...?

지금 누가 키즈카페를 차린다고 하면 정말 발벗고 나서서 말려야 하는 아이템이죠. 인구도 줄어들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업이잖아요.

하지만 2015년에는 일단 지금과 같은 인구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던 시기였고 신도시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서 어쨌든 서울, 수도권에서 자가를 마련하지 못한 신혼부부들이 밀려나서 아이를 많이 낳았던 시기였죠.

그래서 우후죽순 신도시들에 키즈카페가 생겼고, 몇몇 발빠른 사업자들은 아이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IP를 기반으로 한 키즈카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중 하나가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인공이예요.

신도시가 어디인지는 말씀드리지 않을께요. 그리고 IP명도 말씀드리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답 없는 사후관리를 떠맡다.

일전에 말씀을 몇 번 드렸던 것 같은데요.

신입 VC가 입사를 하게 되면 일단은 기존 심사역들이 투자했던 사후관리건을 넘겨받는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는 거의 50개에 가까운 사후관리건을 물려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프로젝트 투자도 많이 하는 하우스였어서 지분투자건 보다도 프로젝트 투자건에 대한 사후관리를 많이 떠맡았었어요.

VC업계에서 흔히 프로젝트 투자라고 하면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전시회" 같은 것들을 말하거든요. 저희 하우스도 대부분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이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 중에서 한개 정말 특이한 사후관리건이 있었는데 이게 바로 오늘 말씀드릴 건이예요. 

바로 애니메이션 IP를 기반으로 한 키즈카페였어요.

그것도 수도권에서는 좀 떨어진 신도시에 만들어 놨더라구요? 영업은 대략 제가 입사하기 1년 전부터 시작을 한 상태여서 프로젝트가 중간에 빠그러지거나 한 건 아니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이었죠.

워낙에 특이한 딜이기도 하고 살면서 키즈카페 투자건을 사후관리해 볼 일이 또 있겠나 싶어서 대표이사에게 연락하고 바로 신도시로 향했던 기억이 나네요.

 

키즈카페와의 첫 만남

당시 저는 결혼을 한 상태도 아니었고, 딱히 애들에게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키즈카페란 곳을 들어가 볼 이유가 없었어요.

지금은 키즈카페를 하도 자주 가서 대충 구조만 보고도 "오늘은 저기서 짱박혀야겠구나."라는걸 알게 되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알 리가 없었죠.

그래서 그날 방문한 게 제 인생 첫 번째 키즈카페 방문이었어요.

저의 첫 인상은...뭐랄까요...

갑자기 30년 이상을 훌쩍 뛰어넘어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어요. 저 조차도 그런 아기자기함과 신기한 구조물들에 설레일 정도였으니까요.

위의 이미지와 같이 꽤나 깔끔하고 뭔가...좀 정겨운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종업원들과도 몇 명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다들 돈 보다는 아이를 좋아해서 일하는 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요. 대표님은 다른 사업으로 한 번 Exit을 하셔는데 차를 타고 지방에서 서울로 가다가 이 신도시 팻말이 보여서 들어왔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하시더라구요. 약간은 후회(?) 된다는 말투로 말씀을 하셨죠...

일단 평일이다보니 손님(애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대충 매출과 비용의 구조를 파악했고 시설들이나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평이한 사항들을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논의했어요.

일단 방문 전에 숫자만 봤을 때는 답이 없었거든요.

월별로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거의 3천만원 이상의 손실이 매월 발생하고 있었어요. 영업 후 1년이 지났으니 완전 초기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떻게 회수를 해야할지 논의했어요. 

당장은 매출을 늘리는 것 외에는 크게 현 상황을 타개하기 힘든 것으로 파악이 되었는데, 이 신도시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원장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서 조금씩 매출을 늘려보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어요.

그런데 저는 오기 전에 비용항목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보고 왔었는데 첫 방문에는 그걸 물어보진 않았어요. 마지막에 가서야 이 항목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답이 없구나~라는걸 깨닫게 되요.

 

구멍난 독에 물 붓기...  

회사에 돌아와서 계속 월말 보고를 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숫자가 개선되기는 커녕 계속해서 적자 규모만 커지고 있었죠.

투자금액이 10억원이 좀 안되서 큰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었는데 어쩌다보니 회사 내의 주요 사후관리 대상이 되면서 저는 대표이사를 더 쪼게 되었죠.

그 분이 나이도 좀 있으시고 해서 쪼인다고 쪼여지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몰랐던 부분에서 새고 있었던 비용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개선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사후관리를 6개월 쯤 지속한 시점에는 정말로 현금이 고갈되어 버렸어요. 손님은 조금씩 들어오지만 결국 나가는 비용 따져보면 마이너스가 되는 거지요. 대표이사도 계속 가수금을 집어넣고 있긴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문을 닫을지 알기 어려웠어요.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대표이사에게 저녁 식사를 요청했어요. 딱딱한 자리에서의 취조(?)로는 현 상황이 좀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따로 보자고 했지요.

저녁 식사니까 당연히 술을 같이 마시게 됐는데,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니까 진짜 문제점이 뭔지 말씀을 해주시더라구요.

대부분의 매출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오는 단체손님에게서 발생한다고 해요.

문제는 이런 기관의 원장들은 소위 골라서(?) 키즈카페를 간대요.

소위 뒷돈을 주는 키즈카페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거지요. 물론 모든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원장들이 이렇게 부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몇몇 분들이 이렇다는 거예요.

이 뒷돈은 현금으로만 거래가 되고 주로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처리하는데 대표이사가 돈이 없으면 회사 돈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회사에서는 이걸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하는데 저는 초반에 이 부분에서 이질감을 느꼈던 거였어요. 

마케팅이라면 일반적으로 지출되는 마케팅 대행사라던가...비용 처리 대상이 있을 것인데 그런 부분이 좀 불투명해 보였던 것이지요. 대표이사의 얘길 들어보고서는 이해가 갔어요. 이런 영업 비용은 명확하게 회계처리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아무리 그래도 단체손님에게서 나오는 매출의 일정 부분만 뒷돈으로 제공할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빵꾸가 많이 나느냐고 따졌어요.

대표이사 얘기로는 초반에 나갔던 인테리어 비용이 매우 과대했어서(쉽게 말해 호구 잡힌 거지요...) 캐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오픈하게 되었고, 기관 영업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나중에 받을 입장료는 있겠지만 당장 나갈 영업용 현금이 더 급하게 되는 물고 물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당장 3천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걸 한달 정도만 뒤로 다 계산해 보면 실제로는 이익이라는 얘기지요. 하지만 당장의 하루 하루는 계속 손실이 날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대로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은 추가적인 프로젝트 투자를 유치하거나 뒷돈을 끊어야 했어요. 하지만 뒷돈을 끊자니 단체 매출이 뚝 끊길 것이 명확했고 추가 투자유치는 요원한 일이었어요.

진짜로 "구멍난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어요.

결국 적절한 마케팅이나 영업을 통해서 소위 질 좋은(?) 매출을 늘리는 게 유일한 방안으로 보였죠.

그러던 때에 이 사업에 사형선고와도 같은 일이 발생해요.

 

몰락은 한 순간에...

계속 적자를 지속하면서 돌려막기를 하던 중 이 사업에 결정타를 먹이는 일이 발생해요.

바로 같은 신도시에 대기업들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초대형 키즈카페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저희 같은 조그만 업체들은 한 순간에 긴장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제가 지금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살고 있는데 이런 대형 키즈카페가 생기면 주변의 조그만 키즈카페들은 정말 말 그대로 줄폐업을 하더라구요.

저도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고 장난감들이 아기자기했던 짱박히기 좋은(?) 키즈카페를 자주 갔었는데 주변에 뽀로로 테마파크 하나 들어오니까 몇 달 못 버티고 폐업을 하더라구요...안타까운 자본의 논리죠...

좌우지간 대기업이 만든 키즈카페가 들어오고 나서는 적자폭이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아니 이 쯤 되면 비용을 어떻게든 줄여야 되는데 어떻게 된 건지 따졌더니...

아무리 영업을 해도 죄다 대형 키즈카페로만 가버리고 자기네로는 정말 안오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매출로는 이어지지 않지만 향후에는 이어질 것 같은 곳들에 더 무리한 영업을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직접 대기업이 만든 키즈카페를 봐야겠다 싶어서 염탐을 하러 가봤어요.

 

(상기 이미지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곳과는 무관합니다...)

말이 염탐이지 그냥 엿보러 갔었죠.

여기는 키즈카페인지 레디플레이어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뭘 잔뜩 가져다 놨더라구요. 벽에 프로젝터를 쏴서 만든 놀이 공간부터 훨씬 크고 깔끔한 휴게 공간과 식당, 그리고 직원들의 정돈 된 유니폼 등...

이래저래 너무 잘 해놓았지 뭐예요...평일인데도 아이들이 바글바글했어요...오픈 한지 얼마 안되긴 했지만 이건 오픈빨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였죠.

IP는 뭐 저도 잘 모르겠는 애니메이션이긴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부모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화기애애한 거예요.

물론 저희 매장에서도 부모들이 화기애애하긴 했는데 뭐랄까요.... 마치 돈 없어서 시간을 떼우러 온 느낌!??!?!? 그게 강했어요.

그런데 여기 온 부모들은 표정이...

'내가 자식들에게 정말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있다.' 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 차이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죠.

저 조차도 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순간적으로 '나라도 여기 보내겠다...'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저희 매장은 어떻게든 손님을 끌고 와야 하는 입장이어서 불필요한 영업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반면, 이 공간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일부러라도 오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미 승패는 정해진 거였어요.

 

(간만에 등장한 "좌절하는 남자")

저는 좌절했어요.

'이건 못 이겨....도저히 못 이겨....어떻게 이겨....'

염탐을 대표이사와 같이 갔는데 대표이사가 제 표정을 보더니 뭔가 포기하는 눈빛이 되더라구요.

이후에도 계속 커지는 손실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표이사의 가수금으로 인해 사업을 더 영위하기 어려워졌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대표이사가 두손 두발 다 들고 사업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해 왔지요. 

저희는 자발적으로 감액처리 하고 어쩔 수 없이 대표이사가 파산하는 과정까지 보고 받게 돼요. 

대표이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 못 찾아냈는가? 관리의 문제였는가? 영업의 문제였는가? 그냥 시장 상황상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조정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었나?

비주류VC는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최종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생긴 비극이라고 결론내렸어요.

비단 키즈카페에서 뿐만 아니라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마트 같은 기업형 대규모 마트가 중소형 마트들을 폐업으로 몰아가고 있고, 스타필드 같은 초대형 복합매장의 등장에 애매한 백화점들은 문을 닫아가고 있지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이번 에피소드를 정리해 볼께요.

1. 애니메이션 IP를 기반으로 한 신도시 소재 키즈카페 투자건을 사후관리했어요.

2. 처음에는 자리를 잡을 듯 보였는데 불필요한 영업비용이 발생했고 계속 적자를 보게 돼요.

3. 마지막에는 대기업들이 첨단 시설을 무기로 시장 내에 치고 들어오면서 폐업을 하게 돼요.

4. 다시 한 번 뻔한 이야기지만 대규모 자본과 정면승부 해야 하는 산업에서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면 "필패"라는 것을 배우게 됐어요. 이건 회사 구성원들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게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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