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비주류VC의 이상한 뉴스레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하고 솔직한 VC와 스타트업 세계를 소개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비주류VC (Non-mainstream VC / NMSVC) 입니다.
오늘은 월요일마다 발송드리는 "VC생활 10년만에 로맨틱한 사람이 냉소적인 사람이 된 이야기" 시리즈로 찾아뵙게 되었어요.
목요일에는 제가 관심있는 스타트업 산업의 인터뷰나 좋은 글들을 발송드리고 있사오니 많은 분들께 구독 주소를 뿌려주세요!!!
오늘은 열 다섯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사족"이 뭔지 아시죠?
한문을 그대로 바꿔 말해보면 "뱀의 발"이라는 뜻이죠.
속 뜻은 "안 해도 될 일을 괜히 덧붙여 하다가 도리어 일을 망친다" 예요.
말 그대로 "괜한 짓을 해서 일을 망치는" 것이죠.
오늘은 "비주류VC"가 겪은 "사족"에 관한 케이스를 이야기해 드리려고 해요.
요새 제가 최대한 조심해서 쓰긴 하는데도, 제가 말씀드리는 회사를 맞춰버리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쓰려고 해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도 산업이나 사업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고 쓰려고 하오니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열 네번째 에피소드에 제가 쓴 회사는 결국 한 분이 맞춰주셨어요.
PEF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신데 너무 정확하게 회사명을 맞춰주셨더라구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를 여쭤봤는데 답변 들어보니 정말 똑똑한 사람은 이렇게나 제한 된 정보를 가지고도 어떻게든 찾는낸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이제 더 조심해서 써보려고 해요. ㅎㅎㅎ
2017년 초반에 시작 된 "한한령"에 대해서 잘 아실거라고 생각해요.
2016년 성주의 한 골프장 부지에 배치 된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즉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인해 중국이 한국의 거의 모든 콘텐츠들을 차단하는 방식이 한한령이었어요.
이 한한령으로 인해 2016년 대비 2017년 한국 방송콘텐츠의 대 중국 매출액이 6분의 1로 감소하였고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심지어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출 한 화장품 업체들이나 대기업들도 이 한한령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고 심대한 피해를 입었죠. 그리고 사실상 아직까지도 한한령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중론이예요.
오늘 해드릴 이야기가 대충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 까지 걸쳐 있었던 이야기예요.
당시 한한령 때문에 투자 업계도 상당히 위축된 부분이 있었죠.
당시 분위기는 "중국" 하면 거의 "만능 키"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스타트업들도 대부분이 중국 진출을 기본 전략으로 깔고 있었고 한국 시장보다는 애시당초 중국에 진출하는 걸 베이스로 한 업체들도 상당했어요. 실제로 이런 업체들에 투자가 몰리기도 했어요.
그 중에서도 오늘 말씀드릴 업체는 중국으로부터의 대규모 물량에 따라 급성장 한 산업에 속해 있었고, 경쟁적으로 업체들이 난립하는 시기였어요.
한 건 당 매출이 수십억원 까지도 만들어질 수 있는 대규모 수주사업이다 보니 이 분야에서의 창업이 꽤나 활발한 시기였고, 한국 보다는 중국에서 수주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중국법인을 설립하는 추세였죠.
다급해진 플레이어들
솔직히 싸드 사태 이전에는 정말 잘 나가는 회사들이었어요.
매년 매출액이 급등하고 있었죠. 중국으로 전 세계 자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 업체들이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한국 업체들과 거래를 해 왔었어요.
그 때문에 이 산업 내 플레이어들은 몇 년간 IPO를 준비하면서 급성장을 이룰 수 있었죠. 하지만 정말 하루 아침에 싸드사태라는 천지개벽할 일이 생겨 버린 거지요. 위 이미지처럼 모두가 미사일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어요.
제가 이 업체를 맨 처음 만난 건 2016년 말이었어요. 당시 저는 IR까지 진행을 했었고 저희 회사에 방문해서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던 대표님의 목소리에는 성장을 확신하는 힘이 실려 있었죠. 회사의 성장세를 보았을 때 머지않아 IPO도 가능해 보였어요.
사실 저 이전에 한 차례 투자한 VC가 있었어요.
이 VC의 심사역이 이 회사의 추가투자유치를 위해 동분서주 하는 상황이었죠. 지금 생각해봐도 그 VC의 노력과 열정은 존경심이 들 정도였어요. 자신의 포트폴리오라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많은 VC들을 연결해 주면서 자기 회사처럼 설명을 일일히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거든요. 하지만 그 VC는 정말 자신의 회사처럼 일을 했어요.
이 심사역의 노력에 제가 감동해서 IR을 진행한 것도 일정부분 있다고 봐요. 역시 투자 업은 사람이 하는 거예요. 이런 감동도 분명히 투자의사결정에 한 몫 하거든요.
평소 알고 지내던 심사역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이 계속 밀어주는 회사라면 망하진 않겠다는 생각도 있긴 했어요.
길어지는 IR 과정
하지만 이러한 VC의 노력과는 별개로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어요.
제 희미한 기억에는 회사가 자회사로 중국에 법인을 세워뒀고 업의 특성 상 인건비가 굉장히 많이 지출되는 상황이다 보니 자금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중국 내에서의 수주는 점점 끊기고 있는데 고정비인 인건비는 확 줄이기가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심지어 회사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다 보니 원활하게 HR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었고 시시각각 발생하는 일들을 모두 대응하기도 어려웠던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자금이 가장 절실했어요.
대규모 수주사업이다 보니 수주를 따내기 위해 일정 숫자의 인력을 반드시 유지하고 있어야 했지요. 그러면 당연히 인건비 부담은 커지고 만약에 수주가 안 나올 시에는 모두 매몰비용이 되어버린다는 "모 아니면 도"인 사업이었어요.
게다가 싸드까지 터졌으니 더이상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유치를 미룰 수 없게 되었던 것이지요. 제가 표현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상 투자금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는 업체였고 이전부터 그랬던 건 사실이예요.
이 업에 뛰어 든 회사들의 가장 큰 경쟁력이 "중국 사무소가 보유한 브로커의 능력"이었어요. 결국 대규모 수주를 따내기 위해서는 중국인이든가, 아니면 중국에서 경험이 풍부한 누군가가 영업을 해줘야 가능했어요.
어찌 보면 회사가 가진 핵심적인 기술력들과는 무관한 소위 "꽌시"로 경쟁사들과의 차별성을 가져가야 하는 약간은 기형적인 사업이었어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저 포함해서 약 6~7군데의 VC들이 IR을 했었고 투자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사업구조상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져야 지속성이 있는데 싸드 때문에 그렇지도 못하고, 회사의 핵심 기술력 보다는 브로커의 영업 능력에 좌지우지되는 회사 실적은 VC들로 하여금 계속 성장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 제가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솔직히 밀어붙이면 투자를 해볼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VC들이 머뭇거리는데 혼자서 손을 들어버리기도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예요.
그리고 투자심의회 때 나올 예상 질문들을 생각해 보면 상당부분 "잘 될것 같습니다."라는 근거 없는 답변을 상당히 많이 해야 할 것 같았죠.
그런 것들 때문에 저도 망설이고 있었어요.
결국 "사족"이 되는 자충수를 두는 대표이사...
대표님이 하루 걸러 한번 씩 전화가 오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만큼 급하셨다는 것이지요...
대표이사의 주 업무가 "돈 구하러 다니는 것" 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지만, 저 당시의 대표이사는 정말로 돈을 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걸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지금 투자유치가 안되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통화때마다 원론적인 질문 밖에는 드릴 수가 없었어요.
"관심은 있으나 당장 진행은 좀 무리가 있다. 혹시 다른 VC들 중에서 의사결정한 곳이 있느냐?"
대표님은 계속 다들 관심이 많고 곧 투자가 집행될 것 같으니 비주류VC도 빨리 의사결정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죠.
일단 제가 그 때 다른 VC들에게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전화를 하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오늘 말씀드릴 그 "참사"가 벌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어느 날 대표이사에게 연락이 왔는데 회사로 방문을 좀 해달라는 거예요.
회사에 방문해 주셔서 현 상황을 들어봐 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를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알겠다고 했어요.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하긴 힘들어도 일단 회사를 가보고 어떤지 보는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렇게 회사에 갔는데...
(아무 생각 없이 오래서 온 VC들과 돈 급한 대표이사...)
대표님이 그냥 현재 관심있다고 생각되는 VC들을 한 자리에 다 불러놨더라구요...
제 기억에는 VC들이 저 포함해서 7명은 온 것 같았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해봐도 이렇게 많인 VC들이 한 회사에 모일 일은 주주간담회나 정기주주총회 정도 거든요?
단순 미팅에 이렇게 많이 모이는 경우가 잘 없다 보니 굉장히 이질적이었죠. 처음 든 생각은 대체 이게 누구 아이디어인지 궁금했어요.
구지 이렇게 다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싶었죠.
솔직히 이렇게 불러놓으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어요.
회의 시작하고 한 20분 정도 지나니까 진짜 그렇게 흘러가는 느낌이었어요.
(도떼기시장이 되어버린 회의실...)
일단 대표이사의 멘트 중 인상 깊었던게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분이 얼마나 투자하실 건가요?"
다들 '읭?' 하는 표정이 되었죠.
왜냐면 여기 온 누구도 아직 얼마나 투자할지 안 정했던 거였어요.
갑자기 무슨 경매장 분위기가 되버리면서 다들 당황한 눈빛을 감추지 않았죠.
대표와 CFO는 더 당황한 것 같았어요.
하도 다들 눈치만 보니까 한 곳에 모아놓고 쇼부를 보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있다"는 티를 팍팍 내기 시작하는 VC들을 마주보고 있으니 뭔가 잘못됐다 싶으셨나봐요.
좌우지간 회의는 한시간도 되지 않아서 끝이 났고 나중에 다시 각자 회사와 협의하기로 하고 헤어졌어요.
VC들은 1층에서 다시 커피숍에 모였는데 다들 투자의지는 사라진 상황이었어요.
일단 "불쾌하다"라는 단어로 VC들의 의견이 모아졌던 것 같아요. 아무리 회사가 급하다고는 해도 VC들을 불시에 한 곳에 모아놓고 도떼기시장에서 경매하듯이 얼마씩 낼거냐고 묻는 것 자체가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거죠.
저는 사실 별 생각 없이 갔지만 정말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었던 것 같더라구요.
결국 당시에 누구도 투자하지 않아서 회사가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나요.
그리고 찾아 보니 현재는 폐업을 했네요.
이후에 동종 업계의 회사들의 IPO가 활발히 되기도 하는 등 산업은 빛을 보았지만 이 회사는 당시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 같아요.
안타까운 현실이었어요.
이번 에피소드를 정리해 볼께요.
1. 중국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던 회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싸드배치를 계기로 회사에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2. 여러 VC들이 투자 관심을 보였지만 대외적인 상황과 BM때문에 망설이고 있었죠.
3. 답답한 대표이사가 VC들을 한 곳에 소집해서 투자금액와 일정을 조율하려 했지만 이는 자충수가 되어버리고 결국 펀딩에 실패했어요. 현재는 폐업했어요.
4. 투자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걸 배웠어요. 아무리 급해도 도떼기시장처럼 다 불러모아서 경매하듯 펀딩을 하려는 행동은 펀딩 실패를 앞당길 뿐이예요.
"비주류VC"는 계속 스타트업 산업과 투자 업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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