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비주류VC의 이상한 뉴스레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하고 솔직한 VC와 스타트업 세계를 소개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비주류VC (Non-mainstream VC / NMSVC) 입니다.
오늘은 월요일마다 발송드리는 "VC생활 10년만에 로맨틱한 사람이 냉소적인 사람이 된 이야기" 시리즈로 찾아뵙게 되었어요.
목요일에는 제가 관심있는 스타트업 산업의 인터뷰나 좋은 글들을 발송드리고 있사오니 많은 분들께 구독 주소를 뿌려주세요!!!
매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연재하겠습니다!
오늘은 열 두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투자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좋아보이는 기업들이 간혹 나타나곤 해요.
숫자나 산업 현황이 너무 좋아서 당장 투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회들 말이죠. 하지만 그런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된다는 뻔한 진리를 조급함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간혹 생기곤 해요.
오늘은 제가 경험이 부족했던 시절에 크게 실수할 뻔 했던 투자건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리려고 해요.
여러분 혹시 골프 좋아하시나요?
오늘 이야기 해드릴 회사는 이 골프산업의 급성장에 제대로 올라 탄 회사였어요.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는 정확히 말씀드리지 않을께요. 요새 눈치 빠른 구독자 분들이 자꾸 회사명을 알아내셔서 난감한 상황이 생기고 있거든요. ^ㅡ^;;;
그 만큼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리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에피소드의 당사자들이 이 글을 보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드는게 사실이예요.
그런데 솔직히 제가 직접 겪은 일이고 거짓말도 안 들어가 있는데 또 구독자분들이 알아내시면 뭐 어떻냐 싶기도 해요. 이런 마인드로 글을 쓰다보니까 또 다시 너무 솔직하게 쓰게 되네요. 그래도 당사자가 혹시라도 이 글을 보면 불쾌할 수 있으니 조금의 마사지는 가미해서 글을 쓰도록 할께요.
골프 산업은 전통적으로 스포츠 산업 내에서도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어 왔어요. 과거부터 부자들의 스포츠로 인식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의 GDP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상당히 대중화 된 스포츠가 되었죠.
사실 골프산업에 젊은이들을 끌어들인 가장 큰 계기는 역시나 코로나 사태였어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좁고 답답한 공간이 아닌 매우 넓고 탁트인 곳에서 3~4시간 정도 건전하게 즐기는 골프라는 운동의 매력이 제대로 어필한 거였죠. 물론 이쁜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장소라는 것도 한 몫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어요.
금액적인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고 골프장들도 몰려드는 예약에 금액을 올릴대로 올려버려서 젊은이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다들 어떻게든 돈을 끌고 모아서 한번 씩 가보는게 유행하기도 했어요.
오늘 말씀드릴 이야기는 이런 코로나 사태가 오기도 전인 2019년 초에 있었던 일이예요.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보니,
"코로나를 거치면서 회사가 더욱 더 급성장 했으려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갑자기 찾아 온 빅딜!?
당시 저는 투자목적이 너무 빡빡한 펀드를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딱 맞는 업체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다른 VC에 있는 형님 한분이 전화가 오셨어요.
그 형님도 제가 써야하는 펀드와 동일한 펀드를 운용중에 있었고 저보다 업력도 훨씬 긴 형님이어서 자주 통화하면서 신세한탄을 하곤 했었죠.
이전에는 사실 매우 좋은 딜이라고 보기 힘든 딜들을 던져주셨어서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자료를 열어보았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IR자료를 보다가 눈이 점점 커지게 되더라구요. 일단 업력이 6년 정도 된 기업이었는데 매출액의 성장세가 말도 안되게 높아지고 있더라구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2배 이상씩 매출이 증가했고 순이익은 작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어요.
2018년에는 100억원 가량의 매출에 6억원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아까 설명드렸던 것 처럼 이 펀드의 주목적에 맞는 기업 중 이정도의 숫자를 보여주는 업체는 많기 않았기에 상당히 매력적이었죠.
빠르게 진행되는 투자 프로세스!
(출처 : 구글(검색어 : 진행시켜))
바로 IR일정을 잡고 투자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간만에 숫자가 나오는 업체를 대상으로 IR을 진행하다 보니 분위기는 정말 너무나도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호호!!!
다른 심사역들도 많은 질문을 했지만 역시나 가장 많은 질문은 어떻게 기존에 하던 사업 부문을 골프산업에 접목할 생각을 했느냐였어요.
이 회사의 제품 자체가 골프장에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많이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투자 심사 당시에도 이 제품이 골프장에 그렇게까지 메인으로 들어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제품 자체는 정말 고리타분한 산업이었단 말이죠.
이전에는 주로 시, 도단위의 체육시설이나 해외에 납품하는 제품 매출이 대부분이었는데 약 1년 전부터 갑작스럽게 골프장에 납품을 시작했다고 했어요.
"갑작스럽게 골프장 쪽으로 제품을 넣게 되었는데 그 성능이 매우 좋다보니 너도나도 주문하더라~" 라는게 대표이사의 설명이었죠.
다들 잘 모르지만 일단 숫자가 나오니까 고개를 끄덕끄덕...
해외 매출도 좀 나온다고 하니까 정말 더할나위 없이 좋아보였어요. 지금의 저라면 그 매출들의 질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을 터인데, 당시의 저에게는 이런 빅딜이 또 없었죠.
그리고 저에게 딜을 소개해 준 형은 이미 예비투심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저도 빨리 발 맞춰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출처 : 구글(검색어 : 당황해서 땀흘리는 사진))
하지만 당시 회사 사정으로 인해서 IR 이후 약 두달 이후에야 예비투심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왜 그랬었는지는 자세하게 기억이 안나지만 제가 두달 동안 매우 조급했던 것은 기억이 나네요.
이러다가 다른 하우스가 채가면 어쩌나...갑자기 대표이사가 맘을 바꿔서 우리만 빼고 그 형한테만 투자를 받아버리고 문을 닫아버리면 어쩌나...
조급해질 때마다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했는데 그 때마다 사람 좋은 목소리로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만 진행해 달라는 대표이사님의 말씀에서 은혜로움을 느낄 정도였어요.
(출처 : 구글(검색어 : 고함치는 남자))
"이런 빅딜을 못 알아보는 하우스 같으니!!!!!"
예비투심 때 제 목소리가 그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 실제로 저렇게 말했던 건 아니고 저런 뉘앙스로 열변을 토했던 것 같아요.
기존의 제품을 이미 여기저기 잘 납품하고 있었고, 이제는 점점 젊은층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골프산업으로 매출처를 넓히고 있는데 이런 회사가 잘 안되면 대체 어떤 회사가 잘 되겠냐는게 제 예비투심의 핵심이었던 거로 기억나요.
좌우지간 다른 투자심사역들도 좀 질린 듯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예비투자심사가 끝나게 됐어요. 이제 IR도 마쳤고 예비투심도 마쳤으니까 5부능선 쯤은 넘었다고 보면 돼죠.
다음 과정은 재무실사를 실시하고 실사 보고서를 토대로 리스크심의를 열면 돼요. 그래서 늘 쓰던 회계법인에 연락해서 아주 대단한 빅딜을 맞길 터이니 최대한 빠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었어요.
조금은 마음 편하게 재무실사보고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때...
터져 나오는 문제점들
(출처 : 구글(검색어 : 조사하면 다 나와))
재무실사에 대해서 그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주니어 시절에는 재무실사는 정말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어차피 벤처회사가 실사한다고 나올게 뭐가 있느냐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있죠. 하지만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매출과 순이익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속일 수 있더라구요. 이 것도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야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 제가 많이 모자랐던 것이지요.
예비투자심의회가 끝난 후 정확히 8일 만에 재무실사보고서가 제 손에 도착헀어요. 당시 회계사님이 보낸 이메일에서 중요한 점을 발견했으니 꼭 읽어보라고 기재되어 있었던게 기억이 나네요.
일단 초반부에는 상당히 좋았어요. 재무실사보고서는 제일 앞에 결론부터 써놓거든요.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실사해본 후 조정 된 자료를 따로 표로 기재해 두는데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회사가 제시한 매출액과 당기순이익과 매우 근사한 숫자들이 표기가 되어 있더라구요.
즉, 회사가 매출이나 이익을 속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너무나도 정직하네요~?
이런 숫자에 정직함까지!
완전 노나는 장사로구나!!!! 정말 기뻤죠.
그런데 그런 기쁨은 정말 오래 안가더라구요.
맨 마지막 항목에 제목이 "특수관계자거래" 더라구요.
어라...?
이게 뭐지...?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 제목만 다른 제목들보다 더 굵어보였달까요...
암튼 뭔가 잘못된 걸 기재해 둔건 확실히 알겠더라구요...
(충격적인 강강술래 목격 장면)
일단 특수관계자거래 항목을 들여다 보니 회사의 주주명부나 직원명부에는 기재되지 않은 A씨와 B씨에 대해서 나왔어요.
이상한건 A씨와 B씨는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들을 맡고 있더라는 거예요. 아니 직원명부에도 없는 사람들이 월급도 안 받고 왜 회사에서 중책을...?
회계사가 이 두분은 뭐하는 분이신지 물어보니 대표이사가 하는 말이...
"회사 초반부터 계속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라고 했대요.
그렇게 고마우면 지분을 주던가 월급을 주던가 했어야지 당췌 왜 이 두명이 회사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지 회계사도 이해가 안 갔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장부를 열어보았더니만...
이 두 명은 각자의 회사가 있고 각 회사의 대표이사까지 맡고 있더래요.
문제는 회사가 A씨와 B씨의 회사와 거래가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심지어 꽤나 큰 자금이 두 회사에 왔다갔다 한 흔적을 발견한 거예요. 수익비용 거래를 연도별로 요약해 봤더니 A씨 회사와는 거의 20억원 이상, B씨 회사와는 거의 8억원 정도의 거래를 했던게 나왔어요.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시그널이죠.
문자 그대로 자기들끼리 "강강술래"를 추고 있었던 거지요...
또 대표이사가 필요할 때 자금을 회사에 넣었다가, 다시 돌려받았다가 하는...가수금 및 가지급금 거래가 굉장히 큰 규모로 빈번히 이루어졌다는 거지요. 제 기억에는 거의 50억원 이상의 금원이 대표이사와 회사 사이에 별다른 회계상의 기재도 없이 왔다갔다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에 대해서는 대표이사가 회사에 자금이 급할 때 자기가 급하게 돈을 넣었던 것이고, 이슈가 해결된 이후에는 그냥 빼온 건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는 거예요.;;;
우리모두 아시다시피 큰 문제가 되죠... 배임 횡령으로 번질 수도 있는 자금 거래예요.
A, B씨와의 거래 관계도 이상한데 대표이사와 회사의 수상한 큰 규모의 자금거래도 상당히 찝찝함을 더해주었죠.
좋지 않은 이별
(아오씨 왜 매번 좋아보이면 꼭 이래....)
재무실사보고서를 다 읽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러고 5분쯤 있었네요.
간만에 정말 좋아보이는 딜이 들어왔는데, 재무실사를 하고 보니 특수관계인간의 거래가 이다지도 많다니...
게다가 회사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회사의 중책을 맡으면서 자기들 회사와 매출 거래까지 하다니...
이건 뭐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충격적인 강강술레"가 아니고 뭐겠어요?
이제 VC의 시간이 돌아왔어요.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도 투자를 할 것이냐, 아니면 이 쯤에서 접을 것이냐.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네. 결론을 내렸어요.
Drop입니다요.
이대로는 리스크심의를 열어도 분명히 Drop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제 선에서 마무리 지었어요.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 사항에 대해서 설명을 했어요.
대표님과 그 A, B씨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다만 좌우지간 이런 수익거래가 생겼다는 건 굉장히 수상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언제나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는 투자하기 어렵다고 얘기했어요.
차분하게 대답해주는 대표이사에게서 이전의 그 친절한 목소리는 이미 사라졌더라구요. 대표이사는 지금 돈을 너무 잘 벌고 있어서 늬네들 필요 없다는 식으로 젠틀하게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그 둘(A씨, B씨)에게는 투자유치가 끝나고 난 다음에 지분을 줄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니...투자를 하고 나면 지분의 양도에 대해서는 투자자에게 동의권이 있는데 어떻게 자기가 맘데로 제3자에게 지분을 준다는 것인지...이 쯤 되니까 이 대표이사가 벤처투자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구나 싶었죠.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대표님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하고 통화를 급하게 마무리 했던 기억이 나요.
이후에 이 딜을 소개해 준 형님에게도 이 보고서를 공유드렸고 그 쪽도 당연하게도 Drop되었어요.
이 글을 쓰면서 이 회사를 검색해 보니 2018년 약 1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다음해인 2019년에는 매출액이 30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네요. 분명 100억원의 매출도 뭔가 꼼수를 써서 만들어 낸 것 같고, 이후에도 2019년까지만 정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사업을 접은 것 같아요.
크게 물릴 뻔 했네요...
이래저래 좋은 교훈을 얻은 딜이었어요.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제가 깨닫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아요.
1. 회사가 아무리 좋아보여도 일단은 중립기어를 박고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요.
2. 회사 내부인력의 개인회사와 거래를 하게 된다면 언제나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대표이사가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직원의 회사에 물건을 줘서 부당한 이익을 챙길 수도 있고 부적절하게 재고를 털기 위해서 이런 회사를 활용할 수도 있죠.
3. 재무실사는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해야돼요. 실사비 500만원이 아까워서 수억원을 날리는 것은 정말 해선 안될 행동이예요. 투자해서 실패할 수는 있어도 정상적인 절차로 실패해야지 이상한 이슈들로 인한 실패는 "실패"가 아니고 "실수"예요.
4. 투자 이후에는 대표이사도 지분을 맘데로 어쩌지 못해요. 이 부분을 잘 알고 투자유치를 해야 돼요.
"비주류VC"는 계속 스타트업 산업과 투자 업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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