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비주류VC의 이상한 뉴스레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하고 솔직한 VC와 스타트업 세계를 소개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비주류VC (Non-mainstream VC / NMSVC) 입니다.
오늘은 월요일마다 발송드리는 "VC생활 10년만에 로맨틱한 사람이 냉소적인 사람이 된 이야기" 시리즈로 찾아뵙게 되었어요.
목요일에는 제가 관심있는 스타트업 산업의 인터뷰나 좋은 글들을 발송드리고 있사오니 많은 분들께 구독 주소를 뿌려주세요!!!
매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연재하겠습니다!
근데 이번주 목요일은 제가 휴가 일정 때문에 한주 연재를 쉬게 되었어요. 양해를 부탁드려요! ㅠㅠ
오늘은 열 한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오랜 VC생활 중 대부분의 포트폴리오는 저에게 손실을 안겨다 주었어요.
아무리 10개 투자해서 1개나 2개만 성공하면 모든 실패를 다 덮을 수 있다는게 벤처투자라지만 손실이 쌓여가고 확정될 때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는 해요.
오늘은 제가 겪은 또 하나의 투자 실패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해요.
(출처 : 한국벤처투자)
일전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한국에서 벤처투자를 하려면 라이센스가 필요해요. 가장 잘 알려진 라이센스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의 "창업투자회사" 라이센스예요. 이 라이센스를 가진 회사는 창업투자회사로써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어요.
이 라이센스가 왜 중요하냐면 벤처투자의 원천이 되는 자금 중 가장 기금이라고 할 수 있는 기관인 "한국벤처투자(KVIC) / 이하 모태펀드"의 출자사업에 지원을 할 자격이 되기 때문이예요.
한국벤처투자는 일종의 FOF(Fund of Fund)로써 일명 모태펀드로 불리는 펀드예요. 1년에 한번씩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고용노동부 등 각종 공공기관으로부터 예산을 끌어와 중진계정, 청년계정, 엔젤계정, 지방계정, 문화계정, 관광계정 등 다양한 계정을 통해 창업투자회사들에게 펀드의 출자금을 50%~60%까지 지원해줘요.
물론 이 과정에서 모든 창업투자회사들에게 자금을 뿌려줄 순 없고 일정 경쟁을 거쳐서 선별된 창업투자회사에게만 자금을 지원하죠. 이 과정이 매우 어렵고 괴로워서 창업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저 같은 VC들은 제안서 기간만 되면 좀비모드가 되곤 해요.
모태펀드의 자금을 받아 결성 된 벤처투자조합은 대부분 특정 주목적 투자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이 주목적 투자 의무 비율이 대략 60% 되요.
예를 들어 펫 산업에 투자하는 펫 펀드라면 펀드의 존속 기간 8년 중 초기 4년 이내에 펫 산업에 속한 기업에 펀드금액의 60%를 투자해야 하는 거예요.
이 펫 산업 펀드가 100억 짜리였고 2025년 1월 말에 만들어 졌다면, 2029년 1월 말까지 60억원을 펫 산업에 속한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거지요.
이 주목적 투자비율 때문에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는 저 같은 VC들은 상당히 어려움을 겪게 되요. 왜냐면 이런 주목적에서 벗어난 회사는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예요.
물론 펀드에 마중물을 부어주는 모태펀드의 입장에서는 정책적인 목적 또한 수익적인 목적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펀드의 설계를 제시할 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이를 지키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창업투자회사 입장에서는 괴장히 고난이도의 운용 허들이 생기는 셈이예요.
오늘 말씀 드릴 회사는 제가 운용하던 펀드의 투자기간 만료 3주 전에 부랴부랴 투자준비를 해서 딱 2주만에 납입까지 완료한 정말 급하게 투자한 건이었어요.
(비주류VC가 투자기간 만료일에 쫓기는 장면_출처 영화 "블릿츠")
투자기간 만료일이 딱 3주 남은 시점에 주목적 투자를 딱 20억원 모자르게 한 상태였어요.
이 주목적을 못 맞추면 꽤 큰 페널티가 부여되거든요. 어떻게든 투자를 내보내긴 해야하는데 3주 남은 시점에 갑자기 좋은게 확 나타날 리 없잖아요?
심지어 이 펀드의 주목적은 투자하기 굉장히 어려운 분야였고 지금까지의 투자 결과도 사실상 그다지 좋지 못했어서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20억원을 못 내보내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전사적으로 주목적 투자가 가능한 기업을 찾느라고 굉장히 분주했던 기억이 나요. 이 펀드는 심지어 개별 프로젝트(영화, 연극, 뮤지컬 등 지분투자가 아닌 특정 이벤트에 투자하는 것)에 투자를 할 수 있다 보니 이런 프로젝트 투자로 인한 손실도 꽤 발생해서 가능하면 지분투자를 하자고 의견이 모아진 상황이었어요. 더 힘들었겠죠?
그 와중에 제가 괜찮은 회사를 하나 찾아냈어요.
일종의 유통회사인데, 좋은 IP를 미리 확보해서 해외 유수의 제조사와 협업해서 제품을 완성한 후 한국에서 판매하는 업체였어요. 어려워 보이는 BM이지만 나름 잘 해내고 있고 이익도 잘 내고 있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투자기간 만료일에 쫓겨서 만난 한 업체 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소개를 해주셔서 바로 다음날 찾아간 것으로 기억나네요. 그 만큼 하루하루가 급박했었어요.
허겁지겁 마무리 된 투자
급하게 만나 뵌 대표님은 50대 중반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가진 분이었어요. 이 회사를 창업하기 전에도 유관 회사에서 꽤 오랜 기간 근무를 하셨어서 많은 네트워크와 산업 인사이트를 가지고 계셨었죠.
특히나 좋은 IP를 잘 소싱하는 네트워크가 뛰어나셨는데 성공 사례들을 들어보니 아주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해외 유수 업체들의 한국 단독 유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매우 좋아 보였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VC들로부터 이미 투자를 좀 받아둔 상태였어요. VC들이 이렇게 조용히 투자를 해 둔 것을 보니 뭔가 숨겨진 내공 같은게 있나 싶었죠.
그 때는 제가 투자를 시작한 지 2년 반 정도 지난 시점이어서 이리저리 레퍼런스 체크가 조금은 가능한 상황이었고 산업에 대한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숙지하고 있는 상태여서 사리분별 정도는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회사에 방문한 다음날 바로 내부적으로 투자심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어요.
시간이 너무 없어서 IR은 생략하기로 했어요. 이게 정말 이례적이었던게 대부분의 투자건은 반드시 IR을 거치게 되어 있어요. 이를 통해서 내부 심사역들도 이 업체에 대한 의견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니까 당연하게도 이 과정을 패스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의무화 되어 있었죠.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IR을 생략했던 거예요. 심지어 주니어심사역이 올린 딜이었는데도 이렇게 하기로 한 걸 보면 저희 회사가 당시 얼마나 급했었는지 알 수 있어요.
대부분의 투자건은 IR 이후 짧아도 2달, 길면 6~7개월 이후에나 투자금 납입이 마무리 되곤 하거든요. 근데 저희는 2주 안에 끝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어서 이런 이례적인 프로세스가 가능했던 거예요.
그 바쁜 와중에 저는 또 CB(전환사채)로 투자하기로 합의를 했었어요. 이전 투자자들이 CB로 들어와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일단 회사 입장에서는 CB가 그다지 좋은 투자금 조달 방법은 아니예요. 제가 생각하는 회사 입장에서 유리한 투자금 조달 방법의 순서는 이래요.
보통주 → CPS(전환우선주) → RCPS(상환전환우선주) → CB(전환사채) → EB(교환사채) or BW(신주인수권부사채)
보통주를 제외한 CPS, RCPS, CB, EB, BW 등은 "종류주식"이라고 칭하는데 이런 종류주식들은 일정부분 회사에 상환이나 전환에 관한 "의무"를 지울 수 있어요.
이러한 투자금 조달 방법에 대한 사항은 다음번에 한번 자세하게 다뤄볼께요.
좌우지간 이번 회사에는 CB(전환사채)로 투자하게 되었는데, 전환사채를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런 조건들이 붙는 거예요.
1. 투자한 금원 20억원을 일종의 "빌려주는"것이예요. 그래서 "사채"라고 해요.
2. 따라서 만기가 있고, 만기 때 원금과 약속한 이자를 갚으면 되요.
3. 그런데 만기 전에 회사가 굉장히 좋아질 것 같으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어요. 이 경우에는 사채를 가진 자로써의 권리는 모두 사라지고 주식을 보유한 주주의 권리만 보유하게 바뀌게 되요.
CB가 좋은 투자방법인 이유는, 회사가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할 때는 만기 때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고, 잘 될 경우에는 주식으로 전환해서 IPO 후 매각이 가능하기 때문이예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CB 정도면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하는 셈인데, 일반적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보통주나 CPS, RCPS로 자금을 조달하고 싶어해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보통주는 투자자가 회사에 자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가 없어요. RCPS는 만기 시점에 자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데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해요. 회사가 이익을 계속 잘 내서 쌓이게 되는 "이익잉여금" 한도 내에서만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어요. CB는 이런거 상관없이 그냥 만기에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지만 RCPS는 "이익잉여금" 한도 내에서만 갚으라고 해야 하니까 CB보다는 불리한거죠.
CPS는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권리가 빠져있고 대신 보유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만 있어요. 사실상 우선주라는 걸 제외하면 크게 메리트가 없는 종류주식이죠.
좌우지간 제가 이야기를 잘 했는지, 피투자회사 대표님이 저에게 감화감동 되신 것인지 20억원을 CB로 투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비투심을 진행하고 리스크심의는 기존 투자자들이 작성한 보고서로 대체했고, 본투심 후 납입까지 정말 딱 2주 만에 끝냈어요.
급하게 한건 역시나...체하는 법...
(급하게 투자한 후 환호하는 "비주류VC"와 회사 임직원들.JPG)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기존 프로젝트 투자한데다가 더 투자하자는 의견이 주류였는데 갑자기 주니어가 나가서 매출액 약 200억원에 순이익 15억원을 내는 회사를 찾아와서는 그것도 CB로 투자를 하게 되었으니 다들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가물가물한 기억에는 밸류도 꽤나 괜찮았던 것 같...
그렇게 그 펀드의 마지막 투자가 마무리 되었고 이제는 기다리는 과정만이 남아있었죠. 투자를 한 7월 쯤 한 것 같으니 연말 실적이 굉장히 기대되는 상황이었어요. 반기 기준으로는 약 150억원의 매출을 내고 있었으니 이론상으로는 작년보다는 매출이 훨씬 잘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게 당연했었죠.
연말에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매출액은 300억원 이상에 순이익은 약 12억원을 낸 것이었죠. 순이익이 오히려 퇴보한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어쨋든 매출액은 100억원 이상 증가하였으니 마냥 신났던 것 같아요.
이 딜을 계기로 저는 저만의 딜을 하기 시작했어요. 투자건 마다 투자심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발굴, 심사, 사후관리로 나누어서 담당자의 이름을 기입하게 되어있어요.
주니어 시절에는 발굴은 시니어 이름이, 투자에는 시니어와 제 이름, 그리고 사후관리에는 제 이름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죠. 그때는 발굴, 심사, 사후관리에 모두 제 이름만 넣고 싶은 그런 낭만(?)이 있었어요. 이 딜 때 제가 발굴, 심사, 사후관리에 제 이름만 딱 넣어봤던 거예요. 어찌보면 정말 의미가 깊은 딜이었던 것이지요.
이 딜 이후에는 제 이름만 박히는 딜을 꽤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윗 분들도 "아 이녀석이 어디 나가서 뭔가 집어올 순 있게 되었구나." 라고 인지하게 만들어 드린 것 같기도 하구요. 그렇게 이번 딜을 통해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었죠.
하지만 역시나...
안 좋은 일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고...이전까지 좋았던 회사의 실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어요.
투자한 다음해에도 매출은 투자한 해와 비슷한 약 300억원이었는데 순손실이 20억 이상 나버린 거지요.
아니...잘 나가다가 어떻게 1년만에 순손실이 이렇게나 크게 찍힐 수가 있는건지...당장 대표이사를 찾아가서 면담을 요청했던 기억이 나네요.
얘기를 들어보니 이 회사의 사업 부문이 A, B, C로 나뉘어 있는데 A부문의 사업부문에서 굉장히 큰 매출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어요. A부문은 국내에서 팔릴만한 제품을 잘 예상해서 해외에서 사왔다가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국내에서 팔릴 만한 숫자를 잘 못 예상한 거였죠. 너무 많이 사와서 창고비나 물류비가 꽤 많이 발생한 거였어요. 어찌어찌 연말까지 매출은 맞췄지만 그때 까지의 창고비나 물류비는 계속 크게 나가버린 거였죠. 그리고 매출은 선방했지만 사실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재고가 아직도 창고에 쌓여있다는게 문제였어요.
A부문은 TV에 방영하는 시리즈물의 피규어 같은 제품들이었어서 시리즈의 흥행에 따라서 매출액이 널뛰기를 하게 되는 단점이 있었어요. 사실 투자할 때는 이게 장점으로 부각이 되었었는데 IP가 실패했을 때의 단점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컸었던 거죠.
정말 신기하게도 매출 2차년도부터 매출이 꺾이기 시작하는데, 이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정도로 피말리는 상황이예요.
1년 만에 바뀐 회사의 실적에 내부 심사역들은 눈총을 주기 시작했어요. 진짜 제 심정이 위와 똑같았어요.
추웠죠!!!!!
투자할 때는 굉장히 좋았는데 1년만에 실적이 곤두박질 치다니. 답답했지만 회사가 제시한 비전을 믿어야 했어요.
회사는 국내에서 굉장히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 그룹의 굿즈를 해외 팝업에서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표이사는 A부문이 어렵지만 이 해외 팝업 비즈니스인 B부문으로 다시 한번 불사조처럼 살아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어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으며 이게 안되면 자신이 이 업을 떠나겠다(?)는 식의 발언까지 하면서 다음해를 기대해 달라고 했어요.
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장주식에 투자할 때 대표이사는 늘 좋은 비전을 보여주겠다고 하잖아요? 내년에 M&A를 통해서 급성장 한다는 둥, 내년에는 높은 매출이 보장되어 있다는 둥...
근데 그런 주식은 꼭 빠지더라구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꿈같은 이야기는 안 이루어지더라는....
이 회사가 딱 그랬어요.
1년을 더 기다렸는데 다음해 매출액은
... 응???
추락 추락 추락...
(회사의 다음 해 매출액을 보고 열광하는 "비주류VC"와 회사 임직원들.jpg)
다음해 매출액은 무려 400억원을 상회했던 거예요!
아니 1년만에 100억원의 매출액을 더 만들어 냈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손익계산서를 받아든 두 손에서는 기쁨의 땀이 눈물처럼 흐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고생 끝이구나!!!"
하지만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서 당기순이익을 확인한 순간 제 표정은 순식간에 바뀔 수 밖에 없었어요.
(당기순이익을 보고 좌절하는 "비주류VC"와 회사 임직원들.jpg)
순손실이 무려 75억원....;;;;
아니...작년보다 매출액은 100억이 늘었는데 어떻게 손실은 50억이 더 났을까요...
당장 또 대표이사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회사로 말 그대로 "날아" 갔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작년에 쌓인 재고가 아직도 처분이 안되고 있고, 결정적으로는 B부문이 진행 중인 사업인 아이돌 굿즈 팝업 스토어가 아직도 해외에 안열리고 있다는 거예요. 이젠 화를 내기도 좀 지쳤어요. 아니 대체 왜 안여는 거냐고 따졌더니만, 국가별로 인증을 따로따로 받아야되는데 한 두 국가에서 그게 늦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그 국가 대통령 멱살을 잡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당장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구요.
대표이사는 다! 시! 한! 번!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어요.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내년에는 반드시 다를 것이다. 내년에는 아이돌 굿즈 팝업을 꼭 해외에 열어서 날아오르겠다!!!!!
어디로 날아갈진 모르겠지만, 제가 뭐 할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 일단은 복귀했죠.
그 날 소주 많이 마셨던 것 같아요.
해가 바뀌고, 드디어 대표이사의 말대로 해외에서 팝업 결정이 하나 둘 나고 있었어요.
굉장히 좋은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B부문에서 정말로 대박이 나서 회사가 매출과 이익을 회복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죠.
그런데 아시다시피...안 좋은 일은 꼭 같이 오더라구요...뭐가 왔냐면요...
네~~ 짝짝짝.
코로나가 왔네요~~~^ㅡ^
당연히 해외 팝업건은 죄다 올스톱 되버렸어요. 이제는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하면 전화도 잘 안받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통화가 되어도 서로 할 얘기도 별로 없었겠죠.
회사는 가지고 있는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해외 팝업도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 유행은 어떠한 기회도 주질 않았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대표이사의 호언장담을 확인하는 연말이 돌아왔어요. 시간 참 잘 가더라구요. 하긴 유난히 빠른 1년 이었는지도 몰라요.
이번 해에는 매출은 재작년 수준인 300억원대로 돌아갔더라구요. 얘기를 들어보니 A부문에서 꽤 많은 인력을 정리했고 재고도 땡처리로 동남아쪽에서 처분을 했다고 해요. 코로나 때문에 열지 못한 팝업 관련 인력들도 많이 정리를 해버려서 이제는 오히려 이익이 1억원 정도 난 상태였어요.
하지만 회사가 얘기했던 성장동력은 솔직히 애매해져 버렸고 그렇게 다음해가 시작되버렸어요.
아름다운 이별?
다음 해가 시작되었지만 회사는 매출 신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반기 까지의 매출액은 약 100억원이었고 이익도 3억원 정도 나고 있었지만 해외 팝업은 거의 물건너가기 직전이 되었고 펀드도 이제 만기를 앞두고 있어서 가능하면 투자지분을 매각해서 현금화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시점이기도 했죠.
갑자기 대표이사가 절 찾아와서는 CB 20억원 중 10억원만 갚으면 안 되냐고 제안을 해오시더라구요.
그때까지 표면이자(CB는 사채이기 때문에 분기별로 이자를 조금씩 지급함)를 받고 있어서 10억원과 회수한 이자까지 포함하면 대략 70%가 좀 안되는 회수율을 기록할 수 있긴 했어요.
많은 고민을 했지만 펀드만기와 회사의 성장동력 상실 등이 겹쳐보이면서 이거라도 빨리 회수해야겠다 싶더라구요.
저는 회사 윗분들에게 회수하자고 주장을 했는데, 다들 절반만 받는게 맞느냐는 반론을 펼쳐서 난항을 겪었어요.
결국에는 제 주장대로 회수를 진행했고 CB 투자 20억원 중 10억원만 회수하고 모든 상황이 종료되게 됐어요.
절반을 잃었어요.
투자 실패죠.
그것도 제가 원해서 했던 첫 번째 제 딜이었는데 끝이 정말 좋지 않았었죠.
그렇게 이 딜에 대해서 잊어가고 있었어요.
다시 부활???
제가 CB를 절반만 매각하고 딜이 끝난 후 어느날 뜬금 없이 증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들어보니까 이 회사가 코스닥 상장을 추진중이라는 거예요.
으잉...? 다시 잘됐나...?
정말 오랜만에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대표이사가 하는 말이..
A, B부문은 그냥 이도저도 안됬는데 갑자기 기대도 않았던 C부문이 잘 되어서 SPAC(스팩)상장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SPAC은 증권사를 포함한 전문 투자기관들이 일단 돈을 모아서 코스닥에 상장하고, 상장 시 모은 자금으로 M&A대상을 찾는 제도예요. 말 그대로 SPAC은 돈만 200~300억 정도 들고 있는 상황이라서 빠르게 M&A대상을 찾아서 합병하면서 딜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갑자기 급격한 복통을 호소하는 "비주류VC".jpg)
아니...작년에는 그렇게 힘들다고 CB 절반만 갚는다고 해서 해줬더니만... 1년만에 갑자기 코스닥 상장...?
비주류VC도 사람이예요.
배가 안 아플수가 있냐구요. 갑자기 엄청난 복통이...
좌우지간 해줄 수 있는건 다 해줬어요. 이래저래 이전 투자자로써도 거래소에 제출해줘야 하는 서류들이 좀 있더라구요.
이런저런 일들이 마무리 되었는데 들려온 얘기로는 SPAC상장이 잘 안된 모양이더라구요. SPAC은 일반적으로 3년간만 존속되고 그 기간 안에 합병 대상을 못 찾으면 자동적으로 상장이 폐지되거든요. 이 회사와 합병을 추진하던 SPAC이 거래 도중에 만기가 도래한 모양이예요.
그래서 저의 배탈(?)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어요.
하지만 작년인 2023년에 이번에는 코넥스 시장에 상장을 하게 되었다고 기사가 뜨더라구요.
코스닥 진행 때 이미 배는 다 아파서 코넥스 상장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배가 크게 아프지 않았어요. 그래도 회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속에 있었는지 기사를 복사해서 여기저기 뿌리고, 대표이사에게 전화해 축하한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제가 깨닫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아요.
1. 일단 너무 급하게 투자하는건 그만두기로 했어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가졌다면 어땟을까 싶거든요.
2. 회수 타이밍에도 깊은 고민을 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깨닫게 됐어요. CB 절반 회수보다는 코넥스 상장 후 회수가 수익률은 분명 더 좋았을 것 같거든요.
3. 회사의 운명은 정말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훌륭한 창업자에게 투자하고 그 이후에는 그를 믿는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걸 세삼 다시 깨닫게 되었어요.
"비주류VC"는 계속 스타트업 산업과 투자 업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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