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VC 생활 10년만에 로맨틱한 사람이 냉소적인 사람이 된 이야기(4)

이 글은 [비주류VC의 뉴스레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약간은 솔직한 VC와 스타트업 세계를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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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주류VC (Non-mainstream VC / MNSVC) 입니다.

오늘은 네 번째 이야기에요.

 

VC를 하면서 겪은 속 터지는 얘기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투자 업계와 스타트업 업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보시는 분이 불편하시거나 본인이 등판할 일 없으시도록 사실관계를 각색하거나 변경한 부분들이 있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시작합니다!

 

많은 분이 이 시리즈를 사랑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어요.

특히나 다음 회차 언제 나오냐는 질타를 받을 때마다 정말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그러네요.

미리보기라도 만들어서 내놓으라는 분들이 몇분 계시는데, 사실 이 시리즈는 미리 써두기 힘든 이야기들이에요.

특히나 주니어 VC로써 기대했던 창업자들과 아름다운 관계가 하나하나 깨지는 과정이라서 그다지 즐거운 경험은 아녀서 그런가봐요.

사람이 기대를 너무 심하게 되면 그 기대감이 사라질 때 어떻게 될까요?

맞아요.

그냥 "한니발 렉터"가 돼버리는 거에요!

점점 스타트업 씬에 실망해 가는 냉소적인 VC만 남아버렸습니다.

 

코딩교육 열풍을 기억하세요?

대략 2018년경부터 갑자기 불어닥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이 코딩 열풍은 사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제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촉발되었어요.

당시 "제4차 산업혁명"은 클라우드, IoT 등 다양한 정보통신의 발전과 확산이 인간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에 갑자기 대한민국을 뒤흔들게 되었어요.

눈치 빠른 학부모들은 이런 정보통신 산업 발전의 근간이 무엇인지 정말 기똥찬 속도로 알아챘는데 그게 바로 모든 프로그래밍의 근간인 “코딩”이었던 것이지요.
정말 대한민국 어머님들 존경합니다.

코딩 교육은 우리가 알다시피 대략 1~2년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크게 유행했었어요. 코로나 시절 갑자기 등장한 메타버스 열풍에 힘입어 거의 모든 IT기업들과 게임기업들이 "코더"를 채용하기 위해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나요. 코딩의 코자도 모르던 사람이 학원 1달 다녀서 "네카라쿠배당토"에 입사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왔던 그 광풍을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이런 광풍이 오기 한참 전인 2018년에 저는 코딩 사교육 시장과 관련된 기업에 투자해 보려고 투자심사를 하고 있었어요. VC들은 이런 식으로 어떤 트렌드가 오기 몇 년 전부터 분주하게 투자를 하고 다녀요. 그게 맞아 떨어지기도 하고 그냥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가 버리기도 하지만 말이죠.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서강대학교 공대를 나왔고, KAIST에서 석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회사는 코딩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교구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매출도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당시에 또 유행하던 VC들의 투자 섹터가 "에듀테크" 분야였는데 정확히 이 섹터에 포함되는 회사이기도 했었죠.

 

"Full Package" & "재무 실사"의 폭풍

대표이사는 첫 IR부터 굉장한 임팩트를 보여주었고 코딩 산업의 갑작스러운 부흥, 대표이사의 전문성과 진솔함, 그리고 건강이 안좋은 점을 극복하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는 입지전적인 모습 등 VC가 볼 때는 문자 그대로 "Full Package"였던 거예요!

저는 빠르게 IR을 진행하고 예비투심까지 통과를 시켰어요.

여기까지 진행되는데 2주밖에 안 걸렸는데 사실 주니어 VC가 진행시킨 속도로는 굉장히 빠른 거에요.

 

문제는 예비투심을 마친 후에 벌어져요.

VC들은 예비투심을 마친 후에 회사가 제시한 재무적 자료들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회계법인을 선정해 "투자 전 재무실사"를 진행해요.

이 투자 전 실사가 왜 중요하냐면 회사가 제출한 매출과 이익, 그리고 회계 계정들이 적정하게 기록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회계담당자를 두고 있지 않아서 세무법인에 월 기장료를 납부하면서 기장을 맡기는 게 일반적이에요. 세무법인은 기장료를 월 10~15만 원 정도 받으면서 재무제표를 만들어주지만, 이 과정에서 굉장히 큰 문제점들이 생겨요.

세무법인 입장에서는 회사의 사업 내용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기장하기 편하게 회계 계정들을 분류해 버리는데 이 때문에 재무제표의 신뢰도가 아주 낮아져요. 그래서 투자 전 재무 실사를 하고 나면 VC들이 처음 제출받았던 재무제표에서 많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재무제표의 적정한 수정 목적 외에도 회사가 숨기고자 하거나 혹은 실수로 제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회계사가 파악해서 알려주기도 해요.

사실은 이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재무 실사를 진행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회계사는 대표이사 및 회계 담당자들, 필요시에는 다른 인력들과도 체계적이고 꼼꼼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항들을 투자자들에게 정리해서 보고해 줘요. 따라서 다른 투자사가 미리 실사를 해둬서 그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지 않고서는 절대로 건너뛰지 않는 프로세스 중 하나에요.

제 기억에 담당 회계사를 마구 닦달했던 기억이 나요. 빨리 투자를 진행하고 싶었고 큰 문제가 없었을 거라고 확신했었거든요. 그리고 예비투심 자료까지도 빡빡하게 만들어서 통과까지 시켰으니까 빠르게 재무 실사를 마치고 투자를 집행하고 싶었던 기억이 나요. 

하루가 급하다고 마구 졸랐고 회계사도 그 압박이 싫었을 것인데 그래도 빠르게 실사를 진행해 주었어요.

그렇게 2주 정도 후에 도착한 실사보고서 Draft에는 처음 보는 말들이 쓰여 있었어요.

바로 오늘의 주제인 "가지급금" 관련한 사항이  쓰여 있었던 거에요.

전지전능하신 네이버에 가지급금을 쳐봤어요.

회사가 계열 기업이나 대주주, 종업원 등을 대상으로 회사 자금을 임시로 빌려주는 돈이라고 되어 있네요.

네. 맞아요.

말 그대로 회삿돈을 그냥 대표이사가 빼다 쓴 거란 거죠.

이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투자심사역들 사이에서 가지급금이 문제가 될 시에는 "정말 가지가지 하네..."라는 자조 섞인 말들이 오간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회사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표이사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이슈여서 그래요. 이건 다른 투심 위원들을 설득하기 거의 불가능한 이슈이기도 해서 예비투심까지 들어간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데 대한 자조 섞인 반응인 거에요.(거의 조건반사...?)

덧붙여서 당시 제가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나는 게, 투자 전 실사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 맞긴 하지만 회계사가 투자자의 입장에서 조금은 잘 써주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VC가 투자하고 싶어서 하는 실사니까 가능하면 투자하는데 크리티컬한 문제가 없게끔 보고서를 작성해 줘요.

그런데 이번에 받은 보고서는 아예 "4. 대표이사의 가지급금" 이라는 항목에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었어요. 회계법인이 이 정도로 정확히 적시한 걸 보면 도저히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거지요.

금액을 보니까 적을 땐 2억 원, 많을 때는 8억 원까지 빼서 사적으로 쓴 거였어요. 돈을 빼다 쓰기도 하고, 돌려놓기도 하고 해서 결과적으로는 4억 원 정도의 가지급금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빈도였어요.

너무 자주 뺐다 넣었다 했던 게 더 안 좋은 일이었던 거에요.

최종 가지급금 금액이 4억 원으로 크지는 않았지만 이 시점에서 VC로써 상당히 고민했었던 기억이 나요. 2018년이면 제가 3년 차였고 아직 주니어 티도 벗지 못한 상황이었거든요. 이런 난처한 상황을 겪지 못했었고 더 갈지 말지는 제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 자세로 10분쯤 있었음)

 

결과적으로는 Drop 했어요.

대표이사에게 이 문제를 논의했을 때, 대표이사는 자신의 채무 상환이 급박해서 그랬던 것이고 금번 투자를 유치하면서 구주도 매각해서 4억 원의 가지급금을 모두 상환할 계획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가지급금을 너무 많이 발생시킨 상황에서 그런 말도 신뢰가 가질 않더라고요. "법인격"의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가지급금이 이렇게 자주 발생할 수가 없어요. 법인도 하나의 인격체기 때문에 회삿돈을 개인이 빼서 쓰면 법적으로는 배임, 횡령의 소지도 있는 거예요. 말 그대로 남의 돈을 함부로 빼간 셈이거든요.

이런 상식이 없다는 점에서 투자 후 제가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할수도 있다고 판단돼서 Drop 했어요. 

그 이전까지 너무나도 좋았던 대표이사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진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이 건을 정말 진행하고 싶었던 제 입장에서는 실망감이 2배, 3배가 아니라 100배, 1,000배까지 증가했던 안 좋은 경험이었죠.

최근 정보를 살펴보니 2018년 이후로는 매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못 했던 것으로 보여요. 회사의 기사도 2019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네요.

 

이 에피소드에서 제가 배운 점은 다음과 같아요.

1. 법인의 돈은 법인의 것이지 대표이사 개인의 것이 아니에요. 가지급금을 발생시키면 투자자들은 대표이사의 진심에는 상관없이 불신할 수밖에 없어요.

2.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Risk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창업자 입장에서는 회계적인 부분도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해요.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당시 영업과 개발에 집중하느라 회계적인 부분은 경리 직원에게 거의 맡겨두다시피 했었는데 절대 그러면 안 돼요.

3. 제가 운 좋게도 좋은 회계법인을 써서 이런 이슈를 미리 발견해서 망정이지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요. 

4. 속 터지지만, 이 일 이후 투자 전 실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찜찜하면 과감하게 Drop 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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