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이야기에요.
VC를 하면서 겪은 속터지는 얘기들을 조금씩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투자업에 종사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겪은 이야기를 최대한 허심탄회하고 가감없이 쓰려고 합니다.
보시는 분이나 혹시라도 본인이 등판하실 일 없게 모든걸 잘 가리고, 업종이나 유관 단어들도 신경써서 잘 가려서 써볼게요.
첫번째 얘기에도 썼지만 저는 처음에 투자업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훌륭한 창업자를 만나 그들의 성장을 돕고 기여하며, 언제든 조력자가 되어 결국 굉장한 성공에 함께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가졌었죠.
말 그대로 로맨티스트 아니었을까 싶어요.
하지만 세월은 무심히 흐르는것이고, 그러면서 또 원하던 원치 않던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사람이 변해버렸답니다.
아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제가 변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들이에요.;;;;
결국 지금은 시니컬한 사람이 되버렸어요.
주니어 시절의 딲새 시절
VC 주니어들은 대게 입사한 후에 자기 딜을 바로 하기는 힘들어요.
주로 시니어들이 물어다 주는 딜이나, 시키는 딜을 소위 닦는(?) 일을 하게 되요.
닦는다는 의미가 무엇이냐면 매우 귀찮은 페이퍼 워크를 담당한다는 의미에요.
우리나라는 벤처투자 관련 라이센스가 크게 3개 정도로 나뉘어요.
“창업투자회사”, “신기술금융회사”, “엑셀러레이터”
크게 이 정도로 나뉘는데 저는 현재 “창업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창업투자회사”는 투자조합을 만들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펀드 규모의 50~60% 정도는 “한국벤처투자”라는 기관에서 조달하게 되요.
“한국벤처투자”는 VC들에게 마중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고 1년에 5~10번 정도의 출자사업을 진행해서 VC들에게 펀드 규모 대비 50~60% 수준의 출자금을 지원해요.
“한국벤처투자”는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등 다양한 정부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끌어 와서 이런 출자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VC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입장이라 “모태펀드”라고 불러요.
정말 감사한 존재이고 한국 벤처산업계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늘 감사드립니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 여러분!
저희 같은 VC들은 모태펀드로 부터 받은 출자금을 바탕으로 나머지 40~50% 자금을 모아서 펀드를 만드는거에요.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결국 국내 VC펀드들에는 대부분 국가자금이 끼어있다고 봐야되요.
더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 세금이 조금씩은 들어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페이퍼웍이 많아요…
“한국벤처투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도 많고, 매월 혹은 분기별로 보고해야 하는 사후관리 관련한 서류도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투자할 때 거쳐야 하는 과정도 매우 많은 편이에요.
미국처럼 “Shark Tank”같은 프로그램에서 시원하게 1~2억을 투자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투심보고서”라는 성스러운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지난 합니다.
그래서 시니어들은 가급적 주니어들에게 투자 기여도를 나누어주고 “투심보고서” 작성이나 이후의 사후관리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서로 Win-win 하는 구조라고도 볼 수 있어요.
시니어는 네트워킹이 잘 되어있으니 좋은 딜을 소싱할 가능성이 높고, 반면 페이퍼웍이나 기타 행정 업무 처리는 주니어가 맡아서 해주면 자신의 투자실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으니 누이좋고 매부좋고가 될 수 있어요.
‘….이건 시니어들만의 생각인가…?’
그냥 넘어 갈게요.
슬슬 나의 딜을 해볼까?
이 딲새 시절이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에 걸쳐 이루어지다 보니 주니어 심사역들은 자신만의 딜을 하고 싶어서 늘 안달이 나있는 상태가 되요.
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온전한 제 딜은 딲새 1년 정도 한 시점에서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직접 딜 소싱을 해서 그 딜을 투심위(투자심의위원회)에 올려서 통과시킬 정도의 짬밥이 차야 가능한 일이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어야 하고 회사 투심위원들의 스탠스나 관점도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야 진행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딜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했었어요.
그 중에 오늘 주제가 될 프랜차이즈 회사가 떠올라요.
이 회사는 대표이사가 학력이 썩 좋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저도 학력이 썩 좋지 못해서…학력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건 절대 없었어요.
대표이사의 그 추진력에 반해서 다른 VC 동생과 딜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 유수의 VC 형님도 투자를 결정해 주셔서 모두 같이 한 배를 타게 되요.
딜이 클로징 된 날 정말 기뻐서 매우 비싼 음식점에서 축하파티를 했었는데, 비용이 매우 높게 나와서 형님께서 매우 힘겨워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얼굴은 웃고 계신데 손은 떨고 계신 뭐 그런 상황…?
(출처 : 엑스포츠뉴스_220602_"박해일 ‘기묘한 표정’[엑's HD포토]")
좌우지간 투자한 후 6개월 정도 지난 시점부터 안좋은 시그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사람의 그릇에 관하여…
사람은 모두 자기 그릇의 크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이게 그냥 추상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게만 볼 게 아니라 정말 실제 생활에서도 그릇에 따라서 의사 결정하는 수준이 차이가 나는거에요.
이 회사는 급성장 하는 회사는 맞지만 내부 통제가 매우 엉망이었어요.
제대로 된 보고체계나 회의록 같은 기본 서류도 없었고 오로지 대표이사의 한마디 한마디, 즉흥적인 순간순간의 판단에 회사가 늘 오락가락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거기다가 대표의 고집도 상당해서 투자자들과 점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런 와중에 회사의 회계오류는 정말 심각한 문제였어요.
프랜차이즈 회사의 특성상 신규 가입 고객들과의 자금거래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때그때 회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엔 말그대로 Chaos를 겪게 되요.
이 회사가 딱 그랬었어요.
과거 몇년치 자료가 거의 없거나 근거가 없어서 회계보고서를 믿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버렸던 거였죠.
투자자들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건 CFO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주변에 많은 CFO후보를 회사에 추천하게 되요.
그런데 이 때 알게됬어요.
사람의 그릇 크기라는게 있다는 것을요.
대부분의 후보군을 대표이사가 거부했는데, 결국 한 명을 채용하게 됬어요.
공인 회계사로써 다양한 벤처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실무 전문 CFO였고 투자자들은 환호를 내질렀어요.
드디어 찾고 찾던 사람이 채용이 되었으니 이제 회계 재무쪽은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얼마 안가 터졌어요.
대표이사와 CFO가 툭하면 싸우기 시작한 거에요.
얘기를 들어보니 CFO는 잘 하고 있는데 대표이사가 자꾸 딴지를 거는 식이더라구요.
CFO는 합리적으로 이렇게 회계처리를 바꿔놔야 한다고 대표에게 말하는건데,
대표이사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거였죠.
이런 말다툼이 잦아지니 회사 내 구성원들도 서로서로 눈치보느라 바쁘고 분위기도 너무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걸 실시간으로 듣게 되었어요. 복장이 터지는 순간들이었어요.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공인회계사가 말하는 회계기준이 신뢰가 갈까요? 대표이사가 말하는 기준이 신뢰가 갈까요?
말하나 마나 CFO가 옳다는건 누구나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이런 말이 나와버려요…
대표이사가 지금 자기 학력이 낮다고 무시하는 거냐는 말을 해버린 거죠…
솔직히 그 시점에서 저는 마음속으로 이 포트폴리오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결국 얼마 안가 CFO는 퇴사했어요.
CFO에게 이 회사를 소개한 VC는 매우 난처한 표정이 되버렸던 기억이 나요.

(출처 : 경항신문_20130227_"[경향포토]난처한 표정")
저는 동반 투자자들과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 구주를 모두 매각해서 1년 만에 Exit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래저래 씁쓸한 경험이었고 이 사건 이후로 저도 모르게 선입견이 생겨버렸어요.
일을 잘하냐 못하느냐, 똑똑하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에요.
사업은 사람을 다루는 일인데 그 부분에서 뭔가 결함이 생기는게 문제였던 거에요.
본인의 의지와는 큰 상관이 없을 수 있는 이런 문제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겪어보기 전에는 상상도 못해보는 문제여서 주니어였던 저에게는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어요.
학력은 너무 많은 정보를 한번에 알려주는 지표에요.
문자 그대로 속터지는 상황을 1년간 겪어보니까, 투자 자체는 참 쉬운데 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저도 모르게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제가 배운 점은 다음과 같아요.
1. 대표이사의 학력이 창업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에요.
2. 하지만 대표이사의 학력이 낮으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채용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3. 결국 회사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대화가 오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자존심 싸움만 하다가 회사 분위기까지도 완전 망가뜨릴 수 있어요.
4. 속 터지지만 투자 검토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더 꼼꼼하게 체크해야겠다고 시니컬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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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