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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유난히 길고 더운 이번 여름, 아이스크림 사먹은 적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 소개할 벤엔제리스는 진하고 꾸덕한 식감과 큼직한 토핑으로 유명한 글로벌 아이스크림 브랜드입니다. 저렴한 편의점 아이스크림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에 사먹는 것이 조금 망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에 담긴,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벤과 제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벌링턴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세계 1위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된 벤엔제리스. 오늘은 창업자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의 Day 0, 1977년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한 번에 한 걸음씩, 깊게 생각하고 실행하라
2. 절벽에서 떨어질 땐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붙잡아야 한다
3. 경제의 톱니바퀴를 넘어서, 사회 변화를 위한 브랜드로
1. 한 번에 한 걸음씩, 깊게 생각하고 실행하라
벤과 제리는 미국의 히피 문화를 대표하는 젊은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히피라고 해서 마냥 자유분방한 마인드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 누구보다 더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다음, 이를 한 단계씩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친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벤은 여러 대학교를 전전하다가 결국 모두 중퇴했고, 제리는 대학에서 의예과 과정을 공부했지만 이후 의대 입시에 모두 낙방했죠.
이후 도예를 가르치던 벤은 도예가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이사를 왔고, 때마침 의대 진학에 실패한 제리도 함께 뉴욕으로 오게 됩니다. 이때 두 청년은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들만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평소 먹는 것을 좋아했던 두 청년은 대학가에 더 많은 음식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도시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 대학가에는 없었던 ‘베이글’과 ‘아이스크림’이 사업 후보에 오르게 되죠. 장비를 구매하러 찾아간 식당 용품점에서 ‘베이글 장비를 사기에는 너희가 가진 돈이 부족하다’는 사장님의 말에, 그들은 아이스크림 가게로 사업 모델을 결정하게 됩니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벤과 제리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5달러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통신 강좌를 수강했습니다. 교과서를 우편으로 받아 읽고, 시험 답안을 작성하여 교수님에게 우편으로 보내 시험을 보는 방식이었죠. 비록 의대에는 낙방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생화학을 공부한 덕분에 제리는 매우 두껍고 어려웠던 아이스크림 제조 교과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강좌를 모두 마친 그들은 이제 실전에 돌입했습니다. 경쟁이 별로 없는 곳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하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 벤과 제리는 날씨도 춥고 아이스크림도 별로 없는 동네인 버몬트주의 벌링턴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기 완벽한 장소를 찾기 위해 클리커를 구입해서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치밀한 조사 끝에 발견한 장소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래된 주유소였죠.
가게 오픈에 필요한 돈을 빌리기 위해 약간의 조작(?)을 더한 사업계획서를 은행에 제출한 벤과 제리는 마침내 벌링턴에서 첫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게 됩니다.
📒 Editor’s Note: 뉴욕의 중소기업청에서 일했던 친구 제프가 한 피자 가게에서 만든 사업계획서 사본을 구해다 주었고, 벤과 제리는 ‘피자’라는 단어를 ‘아이스크림 콘’으로 수정하여 그대로 베껴서 작성했다고 하네요.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싶습니다.
2. 절벽에서 떨어질 땐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붙잡아야 한다
그렇게 벤앤제리스의 역사는 벌링턴의 한 낡은 주유소를 개조하면서 시작됩니다. 벤과 제리는 서로 다른 성향 덕분에 각자의 판단을 신뢰하고 존중하며 사업을 운영했다고 하는데요. 관리하는 업무를 좋아하는 제리는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창의적인 성향의 벤은 모든 맛을 생각해내고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후각이 약해 맛을 느끼기 어려웠던 벤은 맛보다는 식감에 더 집중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큰 덩어리의 견과류가 들어있던 벤앤제리스의 아이스크림은 다른 상업용 아이스크림과는 차별화된 식감으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죠.
📒 Editor’s Note: 그들은 손님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기 위해 매번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퍼주었다고 하네요. 계속된 양 조절 실패(?)는 통으로 포장 판매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라고.
1978년 오픈한 벤앤제리스는 그해 첫 여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벌링턴에서 평균 온도가 20도를 넘는 시기는 여름 뿐이었고,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역과 계절적 한계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스크림을 포장하여 식료품점에 유통하기 시작했고, 벌링턴을 넘어 남쪽 지역으로도 진출하게 됩니다. 1981년에는 타임지에 세계 최고의 아이스크림으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지게 되었죠.
하지만 계속 승승장구할것만 같았던 두 청년에게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당시 하겐다즈를 인수한 대기업 필스버리가 유통 점주들에게 벤앤제리스를 계속 납품하면 하겐다즈를 더 이상 팔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벤과 제리는 이러한 필스버리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벤앤제리스의 생존에 굉장히 위협적이라는 것도 말이죠. 하지만 벤앤제리스가 대기업인 필스버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송 대신 필스버리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도우보이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벤은 미네소타주의 필스버리 본사로 가서 ‘도우보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손글씨가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피켓 시위를 시작합니다.
벤의 1인 시위는 딱히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죠. 하지만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필스버리의 횡포를 알리는 내용을 담아 잡지 뒷면에 작은 광고를 내고, 스포츠 경기장 주변에 공중 배너를 띄우고, 버스 표지판에 광고를 다는 등 많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런 벤과 제리의 끝없는 노력 끝에 필스버리는 벤앤제리스에 대한 유통 제한을 결국 철회하게 됩니다.
그들은 당시를 ‘절벽에서 떨어지며 나뭇가지를 붙잡으려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내 방법이 옳은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는 생각할 틈이 없었죠. 그저 내가 절벽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붙잡는 것처럼,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3. 경제의 톱니바퀴를 넘어서, 사회 변화를 위한 브랜드로
그렇게 벤과 제리는 성공한 아이스크림 회사의 CEO가 됩니다. 이제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직원의 고용과 해고, 사업을 잘 운영해서 은행에 대출금을 갚는 것 등이었죠.
자신들이 경제구조의 그저 또 다른 톱니바퀴가 되어간다고 느낀 벤과 제리는 이제 사업을 매각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자신이 아는 식당 주인에게 자신들의 사업 매각 계획에 대해 말했죠. 그 이야기를 들은 식당 주인은 “만약 너희가 사업에 대해 싫어하는 점이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을 해보는게 어떠냐”고 조언합니다.
그때 벤과 제리는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1985년 벤앤제리스 재단을 설립하죠. 그들은 재단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였을 뿐 아니라, 인종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환경 문제 등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소신 있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벤앤제리스가 다른 아이스크림 브랜드에 비해서 가격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벤앤제리스와 계약한 공급 업체들은 생산 과정에서 제공된 노동, 물류, 에너지 등의 비용을 직접 책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스크림 가격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1990년대 큰 성공을 거둔 벤앤제리스의 경영 상태는 90년대 후반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벤과 제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주주들의 결정으로 벤엔제리스는 2000년도 글로벌 기업인 유니레버에 매각됩니다.
벤과 제리가 매각을 반대했던 이유는 다른 회사가 벤앤제리스를 인수하면 사회적 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죠. 그들은 당시 브랜드의 정체성이었던 사회적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된 이사회를 인수합병의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러한 합병 조건을 유니레버에서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벤과 제리는 결국 벤앤제리스를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유니레버의 이사회에 남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죠. 비록 벤과 제리는 떠났지만 벤엔제리스는 여전히 그들이 만들어온 브랜드 정체성을 이어가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벌링턴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온 창업가 벤과 제리는, 여전히 40여년 전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담아주었을 때의 손님들의 행복한 얼굴을 생생히 기억하며 평생의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 “이 경우는 생존의 문제였어요. 문을 닫으면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제공할 수 없었으니, 어떻게든 아이스크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제리 그린필드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벤과 제리는 최적의 가게 오픈 장소를 찾기 위해 클릭커를 구입해서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일일히 셌다고 하는데요.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사전에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조사하나요?
❓ 창의적인 성향의 벤과 관리자형 성향의 제리는 서로의 역할과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했다고 합니다. 나와 다른 성향의 동료와 함께 일할 때,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 생존을 위해 1인 시위를 했던 벤은 이를 ”절벽에서 떨어질 때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붙잡는 경험”이었다고 표현했죠.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붙잡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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