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 지 모르겠다. 가능한 기록을 상세하게 남겨두어야 겠다.
1. 아들 출산 D-2달, 소득 0원
작년 봄-여름쯤 앤틀러라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이 배워볼 수 있었다. 단체 내의 한 분과 만나 공동창업을 했지만, 대부분의 공동창업이 그러하듯 결말이 좋지 않았고, 나는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야 했다. 첫째 아이가 세상이 나오기 정확히 두 달 전이 었다. 월 소득은 0원이었다.
비전이니 철학이니 다 제쳐두고, 우리 가족의 생존을 최우선시 했다. 내가 가진 능력들을 나열하고, 가장 현금 흐름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게 앱 외주/웹 외주 였다. 절대로 큰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없었고, 철학도 없었다. 일단 분유값을 벌어야 했다.
크몽, 숨고에 처음으로 서비스를 올렸다. 서비스 소개글을 쓰고, 제목을 작성했다. 썸네일 이미지를 선정하고, 채팅 응대 메뉴얼을 작성했다. 이 페이지 하나가 포텐셜의 시작이었다. 원대한 꿈을 꾸게 해준 크몽에게 너무 감사하다.
2. 책, 책, 책
나는 사업이 잘 안풀리거나, 돈이 부족할 때 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평소에는 전혀 책의 도움을 사실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크몽에 서비스를 개설할 때 '정말 엄청난 도움'들을 받았다. 후킹 메세지, 채팅 메뉴얼, 썸네일 하나 하나에 책에서 배운 내용들을 접목했으며 그 결과 별도로 돈 쓰는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클라이언트 들과 계약할 수 있었다.
작게는 50만원 짜리 부터 크게는 2천만원 짜리 까지 닥치는대로 수주를 했고, 24시간/30일 쉬지 않고 코딩을 했다. 나 혼자 개발하다보니, 프로덕트 개발 속도가 엄청 빨랐다. 왠만한 랜딩페이지나 퍼널 페이지들은 하루, 조금 규모 있는 앱들은 3주면 쳐냈다. 내가 줬던 고객 와우 경험들은 다음과 같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이런 고객 경험을 주기가 어렵다. 관련 내용은 아래에..)
1) 새벽 2시에도 채팅했는데 개발자(나)한테서 답장이 옴
2) 1주일만에 데모 완성시켜서, 고객사 투자 받음
3) 비용은 절반 비용으로, 속도는 2배로
4) 개발 업체가 하다가 못한 프로젝트 재하청 받아서 함, 가격도 엄청 쌈 1천만원 이내, 근데 2주 만에 완성 됨
고객들의 와우경험은 자연스레 업체 소개로 이어졌고, 별다른 마케팅을 안했음에도 일거리가 진짜 많았다. 첫달 매출이 2천 8백 정도를 찍었고, 와이프와 오마카세를 먹으러 갔다. 분유 문제는 일단 해결 되었다.
*도움 받았던 책
1) [허브코헨] 협상의 기술 1,2편
2) 세이노의 법칙
3) [칩히스, 댄히스] 스틱
3. 프리랜서에서 사업으로
애초에 이 비즈니스 모델이 스케일업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늘 도움을 받는 멘토에게 조언을 구했다. 돌아온 답은 'BP - Best Practice, 너처럼 프리랜서로 커서 제일 잘 큰 업체를 찾아보라' 라는 것이었다. 국내 SI 업체들, 해외 SI 업체들을 찾아보았다. 인상적이었던 건 베트남 업체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베트남 업체들을 벤치마킹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팀을 어떤식으로 키워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안타깝지만 국내에서는 SI업체가 자신의 힘으로 대기업에 등극한 사례는 없다. 이 말인 즉슨 나도 매우 높은 확률로 다른 에이전시들과 비슷하게 스케일업 하지 못할 거란 뜻이다. 그러다 보니 해외 사례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인도, 베트남에서 성공사례들이 많았는데 250불로 창업해 $18 B 매출을 낸 infosys, ibm 컴퓨터 유통일을 하다가 IT 아웃소싱에 진출해 베트남 시총20위 인 FPT 등. 인도 베트남 중국 등에 성공사례가 많았다.
계속 찾아보다보니 신기한 패턴을 발견했는데, 당연한 일이겠지만 IT아웃소싱업은 계속 더 저렴한 국가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 중국에서 시작된 IT아웃소싱은 더 저렴한 국가인 인도로 이동했고, 요즘은 호치민을 중심으로한 베트남이 핫하다. 더 재밌는 사실은 이것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다른 산업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의류 제조업이 그렇다. 한국에서 시작된 의류제조업은 중국, 인도를 거쳐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현재는 방글라데시가 세계2위의 의류 생산 국가다.
나는 IT아웃소싱의 넥스트 베트남으로 방글라데시아에 베팅했다. 봉제산업과 IT산업은 전혀 달라보이지만 사실 꽤 비슷하다. 둘 다 굉장히 노동집약적이고, 자본 투입 없이 시작 가능하다. 특히 유튜브 덕에 양질의 교육 컨텐츠에 대한 접근이 올라가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IT아웃소싱업의 흐름이 베트남 이후에 어디로 갈지 궁금했다.
2) 봉제 산업과 IT아웃소싱업이 비슷하더라
3) 왠지 방글라데시 일 것 같다.
7월 22일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영어도 못하고, 채용도 한번도 해본적 없는 내가 첫 직원으로 방글라데시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채용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모르고, 디자이너와 어떻게 일해야하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는 지 전혀 몰랐다. 지금도 디자이너 포하드와의 인터뷰가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뽑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긴장이 되었다. 그에 반해 포하드는 정말 당당하고 멋졌다. 어설픈 대표의 무엇을 보고 이 회사의 유일한 직원이 되겠다고 한 건 지는 모르겠지만, 포하드는 이제 나의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구글이나 유튜브에 원격 근무하는 회사들을 검색해 열심히 카피했다. 지금도 뭘 모를 때는 유튜브나 구글에 'How to ...' 을 검색한다. 그럼 대부분 질문이 해결 된다. 방글라데시라는 키워드가 정해졌고, 이제는 나아가는 것만 남았다.
4. 1명에서 20명으로
우리는 게더타운이라는 아주 귀여운 원격근무 환경에서 일한다. 포하드 1명으로 시작한 구성원이 이제는 20명 정도 된다. 아직도 사업 초기 멘토가 했던 조언이 생생하다. '동섭아 나 믿고 제발 딱 한 명만 채용해봐, 모든게 달라질거야.' 역시 그의 말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틀린적이 없었다. 너무 두려웠던 첫 채용인데, 이제는 정말 공격적으로 채용한다. 나는 소프트웨어 공장을 차리는게 목표고, 베트남/인도 공장들과 경쟁을 하려면 최소 300명은 되어야 한다. 돈을 버는 족족 그대로 채용으로 재투자 하고 있다.
인원수가 늘어나니 그만큼 예상치 못한 비용들이 계속 생겨 난다. 쓰는 saas들은 계속 추가되고, 고정비가 조금씩 늘어난다.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발견한 아이러니한 점은 인원수가 늘어나니 나 혼자 했을때 만큼의 개발 속도라든지 퍼포먼스가 나지 않는 점이다. 클라이언트와 1:1 로 소통하면서 개발했을 당시보다, 많은 비효율들이 생겼다. 예를들어 예전에는 내가 그냥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바로 앱이나 웹으로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모든 내용들이 문서로 정리해야 한다. 심지어 영어로 정리가 되어야 한다.
처음에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원이 늘어나다보니 내부적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다. 뭔가 몸이 엄청 갈리듯 너무 바쁜데, 일이 진척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창업 10년차 처음으로 '시스템'을 고민하게 되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영역이다 보니 엄청 어색했다. 그래도 책, 멘토의 도움을 받아 꾸역꾸역 해냈다.
[앤디 그로브, 인텔] 하이아웃풋 매니지먼트
[레이 크록, 맥도날드] 사업을 한다는 것
의 도움이 컸다.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졌다.
팀장이 신규 팀원 채용시 오퍼레터 작성법
한 예로, 회사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은 위처럼 메뉴얼로 작성이 되어있어야 한다. 나는 성격이 엄청 덜렁대고 게으름도 많이 피우고 파워 P 형이라 이런걸 너무 못하는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지난 1년간의 업적 중 가장 큰 업적을 꼽자면, 내가 개발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팀 세팅이 완료 되었다는 것이다. 1인 개발 당시 보다 속도는 늦어졌지만, 그래도 시스템이라는 게 생겼다. (물론 여전히 내가 다른일로 바쁜건 똑같다.)
5. 한국에서 어떻게 키울까?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7~8 개가 넘어가자 팀 내에 혼란이 생겼다. 개발자들은 방글라데시 개발자고, 프로젝트 매니징은 모두 내가 진행하다보니 여기저기서 삐긋 거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벽에 봉착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해 나를 복제하는 것이었다.
첫 한국인 채용을 진행했다. 잡코리아에 글을 올리고 면접을 보는 등의 과정이 모두 처음이었다. 회사를 다녀본적이 없으니, 좋은 회사들은 어떻게 하는 지 감도 못잡았다. 정말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고, 계속 고민하다가 회사 근무 경력이 없던 완전 신입 지원자분을 채용했다. 의사결정에는 순전히 내 직관이 큰 부분을 작용했다.
그렇게 신입 프로젝트 매니저와 함께 일을 진행해보니, 프로젝트 매니저가 아무리 능수능란하더라도 실제 개발자가 직접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것보다는 비효율 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업초기 내가 굉장히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수행할수 있었던 건, 내가 직접 개발하고, 내가 직접 클라이언트와 소통해서 였던 부분을 크게 간과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프로젝트 규모가 일정 금액 넘어가면, 입찰 비즈니스로 넘어가고 우리 회사에게는 불리한 항목들 (4대보험 등록 개발자 수 , 회사 규모, 연혁) 등이 평가항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을 고려할 때 우리가 한국에서 크는 건 내 욕심일 지 모른다.
6. 미국에서 어떻게 키울까?
미국으로 가긴 가야하는데,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나 같아도 나처럼 영어가 어눌한 대표의 회사에게는 개발을 맡기고 싶지 않을것 같았다. 가야하는게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데 길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던 중 정말 행운이라고 밖에 설명 못할 일이 생겼다. 사업 초기에 EO라는 곳에 글을 몇 번 올렸는데, 거기에 올린 글을 보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프린팅 공장 한인 사장님이 연락을 주셨다.
한인 사장님이시긴 했지만, 미국에 오래 계시다보니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원하셨다. 우리로서는 오로지 영어로만 미국 회사와 일해볼 수 있고, 네트워킹을 해볼 수 있는 일종의 베이스 캠프가 생기는 절호의 기회였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기회였고, 정말 최선을 다해 영어 세일즈 피티를 준비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고객사로 모실 수 있었다. 프린팅 공장의 모든 공정들을 코드로 구현해야 하는 난이도가 정말 높은 프로젝트 인데, 실제 진행해보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너무 많은 행운들이 찾아와 주었다. 일본에 계시는 한인 대표님이 연락이 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 클라이언트를 더이상 늘리지 않고, 미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1년 미국 시장에서의 승부가 앞으로 우리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거라 본다.
알렉스 호모지라는 유튜버의 영상에서 'Volume can make Luck' 라는 문장을 본적이 있다. 양으로 승부 보면 행운이 찾아온다. 라는 뜻인데, 알렉스 호모지는 일단 많이 할 것을 권장한다. 똑똑한 사람들이야 Work Smart를 외치지만,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우직하게 양으로 승부 보는 수밖에 없다. 조회수, 팔로워 수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뭔가 되어가는 신호들이 보이고 있다.
계약1 성사 이메일
계약2 입금건
7. 우여곡절, 난관
3명의 해고
사유는 다양하다. 에티튜드는 훌륭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케이스도 있었고, 실력이 뛰어나지만 에티튜드가 좋지 않았던 케이스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해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꽉 막힌 현금 흐름
서류상에는 영업이익률이 매우 좋을 지 몰라도, 현금이 제 때 들어오지 않아 힘든 상황이 많았다. 특히 부가세를 미처 계산하지 못해, 이번 부가세 신고 때 너무 힘들었다.
방글라데시 내 이슈
방글라데시 내 학생 시위로 인해 2주 정도 계엄령 선포 및 인터넷이 셧다운 된 기간이 있었다. 언제 셧다운이 풀릴 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글라데시 팀도 연락이 되지 않아 정말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잘 해결 되었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육아와 창업을 병행한다는 것
내가 와이프를 졸라서 아이를 갖게 된 상황이다보니, 육아에 많은 참여를 해야 했다. 9 to 6 업무 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그 외의 시간에는 육아에 참여해야했다. 밤에도 아이랑 같이 자야하다보니, 불규칙적인 수면 패턴에 불면증이 찾아와 너무 힘들었다. 일주일에 45시간씩만 일해서 회사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잔금 못 받음
천만원 가략되는 잔금을 받지 못했다. 언젠간 찾아올거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8. 올해의 목표
미국 매출 $1M이 목표다. 나만 잘 한다면 충분히 해볼만 한 숫자다. 작년의 나는 올해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스트레스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지만 내년의 우리 팀과 내 모습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