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셋 #커리어 #트렌드
임용 준비하던 문과생이 로블록스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기까지 [리얼밸리]

이번 글은 리얼밸리 컨퍼런스 연사이자 로블록스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로 일해온 김혜진 님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혜진 님은 결혼 후 박사과정을 시작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가면서 커리어 계획을 완전히 바꿔야 했습니다. 임용고시에 도전하던 교육학과 학생이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이라는 세계와 마주하는, 그야말로 완전한 피봇(Pivot)을 해야 했죠. 여러 우여곡절 끝에 혜진 님은 로블록스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10년 넘게 살며 바닥부터 커리어를 다시 쌓았던 혜진 님의 경험은 불확실성이 가중하는 요즘 시대에 사회초년생, 커리어 전환을 앞둔 직장인들이 어떤 관점과 의사결정을 갖춰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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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혜진


 

영어 교사가 미국 이민 후 커리어 전환에서 겪은 우여곡절

 

Q.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혜진입니다. 저는 실리콘밸리에서 12년 정도 살았고, 10년간 다양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어요. 제 커리어는 GSL 랩스에서 오퍼레이션스 어소시에이트(Operations Associate, 운영 관리자)로 시작했는데요. 이후 헬스케어 스타트업 카운실(Counsyl)에서 경영진 비서로 일했으며, 마지막으로 로블록스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했습니다.

 

Q.다양한 이력을 갖고 계시네요. 혜진 님은 어떻게 실리콘밸리에 오게 되셨나요?

제가 처음 실리콘밸리에 온 것은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였어요. 결혼 후 학생의 배우자 비자인 F2 비자로 텍사스 오스틴에 왔죠. 그때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공부도 파트타임으로만 가능했답니다. 

남편이 트위터에 취직하면서 2012년에 실리콘밸리로 오게 됐어요. 당시 저는 H4 비자를 받아서 여전히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이 기간 동안 저는 다양한 커리어를 모색하며 널스 프랙티셔너(Nurse Practitioner, 전문 간호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코딩을 공부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 남편과 함께 영주권을 받으면서 저도 본격적으로 첫 취업을 하게 됐어요. 그 이후로 2024년 5월까지 쉼 없이 일했네요. 현재는 안식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Q.미국에 와서 영주권을 받기 전,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영주권을 받기 전,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어요. 꿈 많은 사회초년생이었죠.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안정적인 길이 열려 있었고,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처음 와서 교사로 일하려니, 영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했어요. 제 영문학 학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고, 배우자 비자로는 일할 수도, 풀타임으로 공부할 수도 없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쌓아왔던 시간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우울해지곤 했답니다.

 

Q.그러게요. 미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커리어를 쌓기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고백하자면, 당시 사람들을 만나면 자격지심이 생기곤 했어요. 실리콘밸리는 아무래도 높은 연봉의 좋은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곳이잖아요. 다들 멋지게 일하는 가운데, 저는  투명인간 같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빨리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이 좌절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처 : 스타트업얼라이언스

 

Q.전문 간호사부터 코딩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커리어를 재구축 하셨어요. GSL 랩스에서 운영직을 맡기로 결정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고 1년 동안 독학을 하고, 6개월 동안 부트 캠프에 전념했어요. 이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는데, 제가 워낙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컴퓨터 앞에서 혼자 코딩하는 게 좀 힘들었어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잘 모를 때는 스택 오버플로우를 찾아보거나 사수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항상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해냈다'는 기분보다는 '누구랑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엔지니어로 일하는) 남편에게 그날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해야 했어요. 남편도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저와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니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몇 개월 일해 보니 저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인터랙션)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실리콘밸리에서 어떻게 그런 종류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스타트업의 초기 단계부터 경험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build)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첫 직장(GSL 랩스)을 찾았어요. 초기 스타트업 셋팅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답니다. 

 

Q.커리어 전환은 참으로 쉽지 않네요. 운영직 또한 처음 경험해보셨을 텐데, 어떻게 적응하셨나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작했어요. 세금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직원들 월급까지 관리해야 했죠. 그렇게 페이롤(Payroll, 급여 대상자 명단)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고, 각종 세금 항목도 배웠어요. 터보텍스나 퀵북 같은 곳에 전화해서 하나하나 다 물어보면서 배웠어요. 재정 관리나 전표 처리 같은 것도 많이 했어요. 

시설 관리도 하면서 랜드로드, 즉 건물주와 조율하면서 회사에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겨야 했어요. 프로젝트도 많이 있었는데, 워크샵 같은 행사도 자주 열리고, 그런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진행하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을 일치시키는 과정

 

Q.이후 카운실을 거쳐 로블록스로 이직하셨어요. 이 과정은 어땠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임신에 관해 고민이 많았어요. 첫 아이는 유산했고, 두 번째 아이는 중기 유산으로 태어난 지 3시간 만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부검 결과에서 유전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유전적 결함을 미리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에 대해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비전을 일로서 실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생각했던 가운데 카운실로 이직하게 됐어요. 카운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임신 중 유전적 결함을 미리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습니다. 

저 스스로 이런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결정할 수 있었어요. 결국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되잖아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니, 내게 밀접한 비전을 가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Q.카운실에서 ‘경영진 비서’로 일하셨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이와 같은 직무를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경영진과 가까이 일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회사를 운영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당장 미국 학위이 없는 상태에서 경영을 경험하긴 어려우니 간접적으로 이를 경험할 수 있는 직무가 ‘경영진 비서’라고 봤죠.

경영진 비서로서 일하는 동안, 저는 미국 스타트업의 운영 방식부터 경영진의 의사 결정 과정까지 많은 것을 배웠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카운실에서 2년 동안 정말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Q.카운실에서 로블록스로 이직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카운실에서 오래 일하고 싶었지만, 회사가 시리즈 G 단계에 접어들면서 상장, 합병, 또는 자립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카운실은 2018년 미리아드 제네틱스(Myriad Genetics)와 합병하게 됐죠. 

마침 2018년 말, 로블록스에서 이직 제안이 왔어요. 제가 제안받은 포지션은 경영진 비서였지만 매우 특정한 스킬셋을 요구했는데요. 일반적인 경영진 비서와는 달리 데이터 구조 이해, Google App Script 다루기, 내부 경영 툴 관리 등 프로그래밍 관련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과 코딩 공부 배경이 있다보니 로블록스에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당시 카운실에서 경영진 비서로서 미팅에 참여하면서 프로젝트 관리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제게도 로블록스의 이직 제안이 흥미로운 기회였어요. 그래서 역으로 로블록스에서 (그간 쌓아온) 경영진 비서 역할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제안했습니다.

 

Q.혜진 님의 역제안은 어떻게 받아들여졌나요?

로블록스 임원과의 점심 미팅에서 제 커리어 목표와 비전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분도 동의하면서 처음부터 듀얼 타이틀(비서, 프로젝트 매니저)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며 일하다가 나중에 완전히 프로젝트 매니저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답니다.

 

Q.당시 혜진 님께서 로블록스 면접에서 나누신 대화를 좀 더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다만 오프라인에서 지식을 전수하는 방식이 점점 변화해 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봤어요. 그렇다 보니 ‘안전하고 건강한 배움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로블록스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어봤어요. 

그 과정에서 로블록스가 세이프티 부서를 가장 크게 운영하고 있고, 이 부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유럽 컨퍼런스에서도 로블록스가 세이프티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강조했고, 미국에서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서비스가 학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대화를 통해 확실히 캐치했어요. 로블록스를 통해 코딩을 가르치는 사례도 많았어요. 로블록스를 사용해 코딩을 배우고 스튜디오를 만드는 아이들의 긍정적인 경험담을 따로 접하면서,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6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너무 좋았고, 저와 함께 일할 임원들도 저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긍정적인 인터뷰 경험 덕분에 내부의 신뢰를 받으면서 (로블록스 합류 후) 저는 중요한 프로젝트와 데이터를 관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Q.어쩌면 각 회사의 산업이나 직무가 다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혜진 님의 관점에서 커리어의 맥락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직무와 회사를 딱 보면 산업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니까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연결된 경험들이라고 생각해요. 

전문 간호사라는 진로를 고민하며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카운실이 제게는 매우 적합한 회사였어요. 개인적으로 임신과 출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회사의 미션에 완전히 공감하게 됐고, 헬스케어 분야에서 일하게 되면서 더욱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후 로블록스에서 일하면서 10대 아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졌어요. 로블록스는 10대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자 교육적으로도 유용한 도구여서 학부모나 학교에서 많이 허용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자의 꿈을 꿨던) 저 또한 큰 보람을 느꼈어요.

 

커리어에 관한 멘토링도 꾸준히 진행하는 혜진 님의 모습, 출처 : 하이데어

 

결국, 제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정 커리어를 한 길로만 가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기회를 찾아갔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계속 변하니까, 20년, 30년 뒤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서 쌓아온 경험들이 어디에서도 버려지지 않더라고요.

비록 널스 프랙티셔너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바이오텍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을 얻었고, 선생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10대 아이들을 고객으로 삼는 회사에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선택하든 지금까지 쌓은 경험들이 제 다음 미션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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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를 대하는 유연함, 이렇게 만들 수 있어요

 

Q.한 길로만 가지 않고 여러 기회를 찾는다. 혜진 님이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영문학이랑 교육학으로 평생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헌데 지금은 대학생들을 멘토링하면서 다른 관점에 대해 이야기 드리곤 합니다. 

보통 대학 1학년 때는 교양 과목을 많이 듣고, 2학년 때 전공 개론 수업을 듣기 시작해요. 3학년과 4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전공 과목을 듣지만, 이 또한 다양한 과목을 섞어 들으며 2년 정도 공부하는 것에 불과해요. 이말인즉슨, 우리가 전공을 안 한 사람보다는 지식이 많겠지만, 실제로 사회에 나가서 이 지식을 활용하기에는 아직 기본적인 수준이라는 의미에요.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전공을 살려서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2~3년 공부한 전공 때문에 앞으로 30~40년의 커리어를 좁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하고, 70세, 80세까지 일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제2, 제3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야 할 수도 있거든요.

기술이 변하면 우리가 가진 지식도 10년쯤 지나면 업데이트가 필요할 수 있어요. 그러니 늘 배우고, 갈고닦아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어떨까 싶어요. 

 

Q.한국부터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 2~3년 동안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지만, 10년 정도 지나면 차이가 크게 벌어져요. 

예를 들어,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물건 파는 일 잘하면 세일즈맨으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탈 수 있어요. 헌데 그와 반대되는 성향에게는 계속 그 일을 노력한다고 해선 성과를 내기 어려워요. 갈수록 매몰 비용은 커져서 그 일을 그만두기는 어려워지고요. 무엇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번아웃 없이 지속할 수 있어요.

이번 리얼밸리 컨퍼런스에서는 사회 초년생이나 첫 이직, 두 번째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께 특히 이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대략 5~10년이라는 기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체 커리어를 보면 짧은 시기예요. 그때의 경험을 레버리지해서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돼요. 20년 전에 전공했던 영문학과 교육학이 로블록스에 들어오면서 다시 쓸모 있게 된 것처럼요. 

결국 배움에 기반한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고 커리어 초반에는 탐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어요. 스스로 미션을 가지고 내가 재능과 시간을 쏟고 싶은 곳을 계속 찾아나가면, 그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쓸모 있게 될 거예요. 너무 전공에 집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커리어 유연성에 관해 실리콘밸리와 한국에 차이점이 있진 않을까요? 한국에서는 한 우물 파야 한다는 조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걸요. 

커리어 초반에 본인을 이해하고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을 거쳐 한 우물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어디서든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코딩을 좋아해서 계속 그 길을 걷다 보니 자연히 실력이 늘어나고, 반면 다른 누군가는 업무로서 코딩을 하는 선에서 차차 격차가 벌어지는 것. 한국이든 미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다만 실리콘밸리에서 본인의 길을 충분히 탐색했는지 여부, 그에 따른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는 걸 느끼곤 해요. 전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천재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그야말로 창의력과 생각의 깊이가 남다른,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실리콘밸리에서는 채용 면접 때 연차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한 끗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게 돼요. 

꾸준히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서 성장하지 않으면, 나중에 경력은 많지만 깊이 있는 경험이 없는 상태로 남을 수도 있어요. 이런 경우 실리콘밸리에서 이직도 어렵고, 매니저나 고위직으로 가기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소위 ‘물경력’이라고 하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 우물을 파기 전에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인지 파악하는 밑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Q.혜진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완전히 제로 베이스에서 커리어를 다시 시작해야 했던 여건이 오히려 제로 베이스부터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다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맞아요. 처음 스타트업에 들어가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면서 여러 역할을 해봤던 것이 ‘저에게 맞는 것’을 찾는 데 중요했어요. 이렇게 쌓아온 경험들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다음 커리어를 선택할 때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매치되는 곳을 찾을 수 있죠. 

 

 

실리콘밸리에는 ‘여러 가지 모자를 써 본다’(wearing multiple hats)는 표현이 있어요. 직무 기술서에 나와있는 것 외에도 필요하다면 다른 많은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의미죠. 결국 그걸 겪어보지 않고선 그 일의 존재도, 그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커리어 초반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겁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에요. 처음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무를 알게 된 것은 카운실에서 경영진 비서로 일했을 때였어요. 회사가 합병되는 과정에서 조직마다 쓰는 툴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면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흥미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때 제가 비서의 역할만 수행했다면 새로운 직무의 매력을 깨닫지 못 했을 거예요. 

로블록스에서 일할 때도 경영진 비서의 역할과 함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자원하면서 다양한 역량을 키울 수 있었어요. 60여 개 팀의 로드맵을 파악해서 회사 운영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기여하고, 부서별 인원 할당을 조율하는 역할도 하면서 회사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능력치를 키울 수 있었어요. 

나중에 임원의 자리에 오르고서 다양한 경험을 좇긴 어려워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받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니까요. 또한 보다 복잡도가 높거나 민감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커리어가 길어질수록) 새로운 경험을 탐색하기 위해 비폿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그래서 초년생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스킬을 넓히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경력이 본격적으로 쌓이기 전, 주니어 시기에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며 자신의 스킬을 넓히고 탐색하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라요. 이 시기에 바보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괜찮고, 멘토링을 요청해도 모두가 잘해주니까요. 커리어에 대해 유연한, 오픈 마인드가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우리가 갖춰야 하는 자세는

 

Q.이번 리얼밸리 컨퍼런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인가요?

리얼밸리 컨퍼런스 세션을 준비하면서 저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렸어요. 영화는 주인공 개인의 이야기를 조명하면서도 1960~70년대 미국 사회가 겪은 주요한 변화를 함께 보여줍니다. 저 역시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겪는 개인적인 커리어 선택들이 거대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실감했어요. 이 곳에서 실리콘밸리의 황금기, 팬더믹, 생성형 AI까지 모두 경험했으니까요.

팬더믹이 닥치기 전, 실리콘밸리에는 자본이 몰렸어요.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고, 채용 시장이 활황이었죠. 여러 스타트업이 상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급변했어요. 주식은 폭락하고,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됐어요. 실리콘밸리의 상징과 같은 기업들이 규모를 축소하는 와중에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힘든 시기였어요. 

인플레이션과 경기 부양책의 여파로 실리콘밸리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어요. 

많은 기업들과 주식시장이 팬데믹 이후 상승세를 보였다가, AI 발전으로 인해 수많은 직무가 빠르게 대체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직원을 너무 많이 뽑았던 기업들은 정리해고로 몸집을 줄이고 경영비용을 최소화하는 분위기가 됐죠. 취업 시장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일련의 거시적인 변화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어요. 이런 수많은 변화의 과정에서 저를 붙잡아준 것은 ‘미션’이었어요.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즐거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미션이 로블록스라는 회사와 만나 예기치 못한 시점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답니다.

 

Q.특히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는 주니어, 사회초년생들에게 와닿는 메시지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든지 불안하고 고민이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조금만 정보가 있거나 조금만 지지가 있으면 큰 힘이 되거든요. 

그러니 (이번 리얼밸리 컨퍼런스는) 중요한 고민의 기로에 서 있는데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위로와 참고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단순히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기업에 들어간 것이 아닌, 다양한 루트로 자기 미션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뜻깊은 시도니까요.

 

Q.실리콘밸리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맞아요.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서) 실리콘밸리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실리콘밸리는 정말 급변하는 곳이고, 그 변화가 모든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챗GPT와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서 실리콘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실리콘밸리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이곳의 다양성과 문화적 차이를 전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단일 민족 사회에서의 다양성을 경험하기 어렵지만, 실리콘밸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문화 충격을 받을 정도로 다릅니다. 그런 차이들을 용어와 개념의 차이까지 포함해 이야기할 예정이에요.

안타깝게도 한국에 전해진 실리콘밸리 이야기 중에는 단편적인 것이 많아요. 저는 진짜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드려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이번 리얼밸리 컨퍼런스를 통해 많은 분들이 실리콘밸리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자신의 커리어와 삶에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혜진님과 11명의 실리콘밸리 한국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방법
👉 리얼밸리 컨퍼런스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 변화하는 시대에 내 직업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
  • 글로벌 산업 트렌드를 파악하고 싶은 분
  • 네트워킹을 통해 나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분
  • 조직에 실리콘밸리 문화를 적용하고 싶은 분
  • 네트워킹을 통해 나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분

 

📌 컨퍼런스 개요

  • 일시 : 7월 5일 (금) 10:00 - 17:00
  • 장소 : 삼성역 섬유센터 3층 이벤트홀

 

👉자세히 알아보기 : 리얼밸리 컨퍼런스  (🚨마감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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