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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람이 12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한 영화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영화님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했고, 현재 창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토스 최초의 프로덕트 디자이너(Tools)로 4년 간 일함.
- 도도 포인트 앱 디자인, 헬로우봇 굿즈 펀딩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프로젝트 진행, 0 to 1으로 유저를 획득한 경험이 있음.
- 현재는 퇴사 후 창업 준비 중.
- 인스타툰, 코칭, 강연 등 외부 활동도 활발히 진행 중.
그래픽 디자인에서 UI/UX 디자인으로
Q. 영화님은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처음부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시작하셨나요?
저는 홍보 대행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홍보 대행사의 업무를 간단히 설명하면, 고객사에서 기업 홍보 업무를 대행사에 맡기고, 대행사는 자료 조사, 마케팅, 홍보 등의 업무를 대신 처리해요. 회사에서 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들은 AE(Account Executive)라는 직무였어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외부 행사에 필요한 현수막부터, PPT, 뉴스레터 등등 다양한 종류의 그래픽 디자인 업무를 진행했죠.
그러다가 해외에서 커리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UI/UX를 다루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직무를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12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Q. 해외에서 일하려면 UI/UX 디자인이 더 유리할까요? 12년차가 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직무를 바꿨던 당시에는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UI/UX 디자인이 더 유리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UI/UX 디자인은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프로덕트를 그리는 작업이니,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UI/UX 디자인은 사용자의 니즈를 프로덕트에 녹이는 과정이에요. 팀원과 회의를 할 때, 그래픽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설득한다면 UI/UX 디자인은 사용자 경험을 언어적으로 설득하는 역량이 꼭 필요해요. 따라서 영어로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해외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게 어려울 수 있어요.
보수적인 환경의 홍보 대행사 vs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
Q. 홍보 대행사에서 시작했던, 신입 시절의 영화님을 한 단어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천둥벌거숭이요. (웃음)
- 천둥벌거숭이: 철없이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덤벙거리거나 날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KBS WORLD)
선배들한테 ‘왜 이걸 해야 돼요? 이해 안 되는데.”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반면 회사는 출근할 때 청바지를 못 입을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었어요. 그래서 선배들은 저를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워 하셨죠.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물론 혼내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하니까, 지금 생각하면 혼내주신 게 감사하기도 해요.
Q. 그러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신 거네요.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에 비해 보수적이었던 홍보 대행사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두 회사에서 다른 경험을 했고, 결과적으로 둘 다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홍보 대행사에서는 비즈니스 매너에서 중요한 이메일 보내는 법을 배웠죠. 고객사를 대하는 업무 특성이 있어 격식을 차리는 게 중요했어요. 예를 들어 인사말, 참조(CC), 비밀참조(BCC) 같은 이메일 문법이 있겠죠. 신입 때는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최근에 창업을 시작하고 활동 범위가 커지면서 비즈니스 매너가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제가 스타트업만 다녔다면 주로 슬랙 메신저를 사용하니 이메일 보내는 법을 잘 몰랐을 수 있어요. 하지만 홍보 대행사에서 경험했던 덕분에 다른 회사에 갈 때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어디든 배울 점이 있고, 그걸 어떻게 커리어에 적용할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스타트업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한 명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온전히 1인분의 몫을 다 해야한다는 점을 배웠어요.
첫 스타트업 면접은 더부스라는 피자집에서 봤어요. 면접관 분들도 어디서 들은 게 있으셨는지.. (웃음) 밥을 먹으며 면접을 보면 면접자를 더 잘 알게 된다는 맥락이었겠죠. 면접 합격하고 입사한 뒤 정말 가족 같은 느낌으로 일했어요.
그러다 6개월 후 회사가 망했죠. 이 때 저는 스타트업이 망하는 과정을 몸소 겪었어요. 비유하자면, 스타트업은 마치 개복치 같아요.
개복치는 일명 ‘돌연사’ 물고기로도 유명하다.
햇살이 강렬해서 사망,
물이 너무 차가워서 사망,
새우껍질에 찔려 사망.
갖가지 창의적(?)인 이유로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향기)
정말 한순간에 망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는 내가 1인분의 몫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후로는 ‘내가 어떻게 하면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아니면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수 없이 살아남기
Q. ‘살아남기’라는 말을 듣고 생각났는데, 사수 없이 고군분투 중인 주니어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사수는 환상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수는 전설의 존재 같은 느낌이거든요. 물론 사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저는 없을 때가 훨씬 많았어요. 특히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사수라고 칭할 만한 역할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스타트업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해야할 일의 양이 너무 많거든요.
오히려 ‘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예방주사를 놓으세요! 사수가 있는 건 너무 당연하고, 나는 사수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마음을 가진 채로 일을 시작하게 돼요. 그러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괴로움이 전해질 수 있겠죠. 반면 내가 사수 없이 스스로 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훨씬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혼자서 더 잘 일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고민해 보세요. 그에 맞게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볼 수 있어요. 그리고 주변 동료에게 피드백을 요청하세요. 저는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더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Q. 모든 스타트업은 신사업이니 사수가 없는 게 당연할지도요. 그런데 영화님은 살아남기도 바쁜 와중에 여러 외부 활동을 하셨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내 경험을 나누면 결국에는 나도 도움을 받기 때문이에요.
오프라인 컨퍼런스에 연사로 나갔던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내가 배웠던 지식을 정리하고 공유하니 배움을 내재화할 수 있었어요. 그 외에도 블로그 아티클을 작성하거나, 유튜브 영상에 참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지식을 온전히 내 자산으로 만드는 과정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돼요.
그리고 저는 혼자 고민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내 지식을 나누면 다른 사람이 같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신입 디자이너나 주니어 분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제가 조금만 방향성을 잡아 줘도 성장의 폭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렇게 업계 전반적으로 지식 수준이 올라가면, 나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Q. 지금은 퇴사한 뒤 창업을 시작하셨어요. 영화님은 앞으로 어떤 ‘자람'을 지향하시나요?
제가 스스로 ‘자랐다’라고 느낄 때는 내가 1인분의 몫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에요.
창업을 한 계기도 다른 사람들과 팀원들을 도우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함인 것 같아요. 토스에서는 사내 구성원에게 도움을 주는 툴을 만들었고, 인스타와 인프런 강의에서는 스타트업 주니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창업하는 과정 중에 계속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와 같은 경험을 가졌던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