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프렌트립

🙎‍♂️ 이 회사 창업자 이야기

[임수열 대표 창업썰 01_창업하기 전까지]

작성자: 태용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기독교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 부모님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뛰어난 사람이 돼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음. 또 연세대학교 출신 밴드 크라잉넛(이상면, 이상혁)이 부모님이 하도 음악을 못하게 하니까 음악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한 인터뷰를 보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인생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함. 나도 크라잉넛처럼 ‘연세대 나왔으니까 음악 해도 되죠???’라는 말을 부모님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믿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학교에 가고 의미있는 일에 쓰이지 않을까 생각했음.


중학교 때 수학경시대회에 열심히 나갔고 고등학교도 서울과학고 나왔음. 학창시절 이미지는 ‘축구 좋아하는 모범생’이었음. 서울과학고등학교는 전국의 전교 1등들이 120명 모여있는 학교였음. 서울과학고에 가기 전에는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과학고에 있는 괴물같은 천재들을 보면서 나는 ‘노력파'였고 세상에는 잘하는 사람, 노력에 재능까지 더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음. 자괴감도 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어느정도였냐면 시험기간 스트레스로 위장이 다 꼬여서 공부하는 책을 들고 가서 병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음. 그때 병원에서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음. 지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대학교 때 딱히 행복하지 않았음. 그때부터 좋은 학교에 다니지만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나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던 친구들이 더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어려서 내가 원하는 다양한 해봤던 경험을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그것도 창업 계기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함. 


이후 카이스트에 진학했고 카이스트에도 정말 뛰어난 애들이 많았지만 동시에 나처럼 삶을 못 즐기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친구들도 많았음. 대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유학가서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업하거나 석박사 과정을 밟는 등의 진로를 밟았고 막연하게 그런 인생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 같음. 대학교 3학년 때 다른 친구들이 진로 고민을 많을 때 누나가 영국 웨일즈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할 일 없으면 방학 때 영국에 놀러오라고 했음. 그런 계기로 웨일즈에서 열리는 겨울 캠프에 참가하게 됐고 그 캠프가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됨. 캠프에서 선생님이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꽂혔던 말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금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에 반응하며 살고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음.


이전 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그냥 상위 1% 대단한 사람, 잘난 사람이 되자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음. 내가 왜 다른 사람을 돌봐야 되지? 와 같은 생각도 했었음. 어릴 적 그린 그림들도 보면 대부분 끝 없는 터널을 지나가면 반대편에 빛이 있는, 그런 류의 그림이었음. 20대 중반까지 내가 뭘 해야 행복한지 몰랐었음. 웨일즈 캠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던져보면서 내가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도 모르는구나, 인생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안 해봤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들었음. 처음으로 장기 휴학을 신청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 결심하게 됨.


이후 장기 휴학을 신청하고 인도, 태국 등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지 등을 관찰하고 들여다 보는 시간을 1년 정도 보냄. 동남아에서 치앙마이와 같은 유명한 곳이 아닌 오지 위주로 여행을 했는데 특히 태국에서 한 달 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낌. 봉사활동 현장에서 아시아인은 혼자 뿐이었고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와있었으며 나와 달리 19, 20세 등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1년 이상씩 장기 봉사활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음. 이때 이 친구들과 앞으로 뭐할 건지 등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충격을 받았음. 나는 삼성전자 같은 곳에 취업을 해야하나? 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19살 친구들은 ‘나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거야.’같은 대답을 함.


그 순간 ‘어린노무자슥이 취업이나 할 것이지…!’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밤에 잠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얘들은 이 나이 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이미 내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갈 것인지 정립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됨. 나는 스물다섯, 스물여섯 살인데...경험의 폭이 진짜 다르구나!!! 늦었지만 더 많은 경험을 해봐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음. 이 외에 태국에서 분명히 가난한데 행복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됨.


그러면서 다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사회적 기업이었음. 어떻게 하면 세상에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NGO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나 사회적기업이 재미있어 보였음. 학교 선배 중에 김성준(P2P 중금리 대출 스타트업 렌딧 창업자&CEO)이라는 사람이 ‘2분의 1 프로젝트'라고 반쪽짜리 물병을 하나 사면 반은 가질 수 있고 반은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 참여했었음. ‘2분의 1 프로젝트’는 렌딧 창업자 김성준 대표가 대표였고 해시드 김서준 대표 등 지금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분들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였음. 가치와 비전이 좋아서 참여를 했고 모 대기업과 피자를 한 판 사면 절반은 취약계층에게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음. 어렵게 파트너를 찾아서 오랜 시간 준비해 진행했던 프로젝트였고 뜨거운 반응을 기대했으나 고객들, 대중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쪽으로 뜨거웠음.


‘대기업 너네들 그냥 기부를 할 거면 기부를 하면 되지 왜 그런 식으로 소비자가 산 걸 반쪽 떼어다가 기부하고 그러냐.????’ 이런 댓글이 수천 개 달림. 우리 입장에서는 좋은 뜻으로 진행했던 것이었는데 소비자들은 생색내기로 받아들임. 대기업한테도 미안하게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 비즈니스, 마케팅에 대해 공부하게 됨. 이렇게 2년 간 해외 여행, 봉사활동, 인턴, 사회적기업 등을 하면서 경영학 학회, 컨설팅 동아리 등에서 비즈니스 공부를 했음.


이후 소셜커머스가 뜬다고 해서 그루폰 코리아에 론칭하기 전에 조인해서 1년 정도 일을 했고 컨설팅 회사에 가고 싶었으나 아는 선배의 유혹으로 임팩트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에서 연구원 일을 했으며, 이후 임팩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크레비스파트너스에서 일했음. 크레비스 시절에 다양한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각자 자기만의 문제를 푸는 창업가들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는 어떤 문제를 풀까?’라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됨. 다양한 문제 중에 ‘삶의 질'의 문제를 해결해보자.


목적 없는 엘리트의 삶을 쫓으며 힘들었던 과거의 나와 2030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를 해결해보자, 젊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보자 생각하게 됨. 어릴 적부터 공부 외로 열심히 한 건 축구, 등산과 같은 아웃도어 활동이었음. 중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축구부 나옴. 이런 액티비티부터 연결하면 어떨까? 하고 프립 초창기 때 아웃도어 액티비티로 시작함.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창업했고 마지막 직장이었던 크래피스파트너스 대표님이 2,000만 원 투자를 해주셔서 3,000만 원으로 창업을 시작함.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님이 투자금을 주면서 했던 말은 ‘망하면 2,000만 원어치 일만 좀 해줘!’


[임수열 대표 창업썰 02_첫 투자를 받기까지]


임팩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크레비스 파트너스 다니면서 여행 관련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었음. ‘어썸트립'이라는 프로젝트였는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데리고 한국 여행을 제대로 시켜주는 프로젝트였음. 주변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이 진짜 한국을 경험한다기 보다 이태원에서 술마시고 클럽 다니기만 하는 거 같은 게 아쉬웠음. 본격적으로 창업을 하기로 마음 먹고 크레비스파트너스 퇴사하고 다음 날 크레비스파트너스로 출근. 재취업한 게 아니고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가 2,000만 원을 투자하면서 사무공간 쓰라고 제공해줬기 때문ㅋㅋㅋ 크레비스 인턴이었던 친구도 창업한 회사로 데려왔음.임수열 대표와 크레비스 인턴, 학교 후배 셋이 창업을 함. 


2013년 7월에 모여서 미션 정하고 회사 이름 정하고 그런 일부터 시작함.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액티비티라는 이름의 ‘프렌트립'과 당시 유행하던 욜로족Yolo에서 딴 ‘욜로트립’ 중 뭘로 할까 고민을 했는데 욜로는 너무 유행탈 거 같아서 프렌트립으로 회사 이름 짓고 첫 번째 액티비티인 강원도 삼척 장호항 스노쿨링 트립을 오픈했음. 초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거였음. 사람들이 하고 싶은 액티비티는 많은데 말만 하면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친구한테 ‘야 스노쿨링 하러 갈래?’하면 ‘너무 좋지~’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하러 가지 않고 그렇게 나이들어감. 이런 사람들 등 떠밀어주고 액티비티를 하게 만들자! 사람들은 누군가 총대를 매야 움직이고 멋있게 말하면 액티비티를 할 수 있도록 트리거 (trigger) 포인트를 만들어주자!


초기 멤버 셋 다 공대생이었으나 코딩은 할줄 몰랐고 비즈니스 가이들도 아니었음. 개발 못한다고 사업 못하냐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걸 빠르게 하자는 마인드로 일단 시작함. 첫 트립이었던 장호항 트립은 페이스북과 네이버 카페를 통해 홍보했음. 결제 시스템 같은 건 없었고 통장으로 계좌이체 받고 버스 대절해서 하고 그랬음. 이후 패러글라이딩, 토마토 축제, 서핑 트립 등을 열었음. 주중에는 달리기, 주말에는 등산 등등. 한 달 죽어라 했을 때 창업 멤버들이 직접 구르면서 30개 정도 트립을 운영할 수 있었음. 이때는 약간 회사보다 동아리 느낌이었음. 트립이 입소문 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트립을 사진 작가와 함께 했기 때문임. 좋은 액티비티를 제공하고 멋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을 태그하면서 좋은 경험과 좋은 순간이 바이럴되기 시작함. 그러면서 5,000명 규모의 커뮤니티까지는 무난하게 컸음. 당시에는 앱이 아닌 페이스북 그룹으로 커뮤니티 운영함.


평일에 가로수길 러닝 크루를 운영했었음. 한강 뛰고 한강에서 치맥을 먹는 그런 크루였는데 나이키, 아디다스 마케팅 담당자분들이 참가하기 시작했고 이 분들이 아웃도어 매니아다보니까 운동화도 지원해주고 아웃도어 업체도 소개시켜주면서 알음알음 브랜드와 협업하는 사례들도 생겼음. 3명이서 30개 커뮤니티를 돌리다보니 나중에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음.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너가 이 커뮤니티 좀 맡아달라고 하다가 지인도 다 떨어져서 호스트 분들을 섭외해서 운영하기 시작함. 약간 대형 동호회 느낌이었는데 직접 커뮤니티 품질을 관리하려니 어려웠음. 기존 멤버들은 이런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은 좀 우리 멤버로 부적합한 거 아냐?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고민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됨. 왜냐하면 프립의 미션은 ‘모든 사람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였으니까.


마침 해외에서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이 J 커브를 그리며 성장하던 시점이었고 에어비앤비가 집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니 우리는 액티비티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업을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첫 VC 투자를 유치함. 그렇게 해서 개발자, 디자이너 뽑고 16년도 3월에 프립 앱을 출시했음. 앱 출시 전까지 2년 정도 걸렸고 초기 멤버 3명과 호스트 10명이서 운영해옴. 초기 멤버와 호스트 포함 10명이 가로수길 근처에 아파트 하나 잡고 같이 먹고자고 하면서 회사를 키움.


# 최근 프립의 성장

프립은 매년 약 2배에 가까운 유저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여행 및 관광 업계가 침체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6년 첫 앱 서비스가 런칭된 이후 4년 만인 2020년 11월 누적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2021년 03월 현재는 약 110만 명 


약 11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프립을 찾는 이유는, 프립에 세상의 다양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이는 호스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호스트 숫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프립 호스트가 전년 대비 61% 증가했습니다. 프립에는 약 1만 6천 명의 호스트가 있으며, 모임을 좋아하는 일반인에서부터 특정 아웃도어 또는 실내 활동의 전문가, 그리고 액티비티 전문 업체 등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립은 이들 호스트와 함께 약 2만 8천개의 다채로운 경험 액티비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등산이나 프리다이빙처럼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으며, 새로운 제주 여행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퇴근 후 한강에서 러닝을 하며 치맥을 즐겨도 되며, K-Pop 댄스나 드로잉, 가죽공예 등의 취미 활동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Untact 시대에 맞게 온라인으로 원데이클래스를 즐길 수 있는 프립VOD와 온라인 취향 동호회 랜선클럽, 고품격 취향 모임 소셜클럽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재미있는 취향이나 전문성이 있다면 누구나 프립의 호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수평어(반말) 모임, 이불개기 습관 형성 모임, 영어 스터디 모임 등 프립과 함께라면 어떤 주제로도 모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프립은 손 쉬운 정산 및 수입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며, 프립에서 슈퍼호스트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월 평균 수입은 약 430만 원에 달합니다. 프립은 MZ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여가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플랫폼입니다. 전체 회원 중 67%가 2535세대이며, 남여 성비는 40:60으로 여성 유저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다양한 경험을 탐험하기에 주저하지 않으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 MZ세대와 함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힙스터들의 새로운 여가라고 할 수 있는 등산 문화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등산은 프립에서 가장 활발하게 참여가 이뤄지는 아웃도어 액티비티로 2020년에는 관련 구매 건수가 2019년 대비 약 250%나 증가했습니다. 제주 지역 액티비티 이용자 역시 2019년 대비 약 760% 급증했습니다. 프립은 제주를 시작으로 국내 각 로컬 지역의 액티비티를 확장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시국에 맞는 거리두기 여행 컨셉인 ‘혼펜(홀로 즐기는 펜션여행)’ 트렌드를 만들었으며, 관련 상품 수는 2019년 대비 450%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프립은 코로나19에도 성장 가능성을 인정 받아 지난 2020년 3월 약 60억에 해당하는 시리즈B 투자 유치(누적 투자 약 97억 원)를 이뤄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프립은 여가 액티비티의 영역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온라인을 아우르는 압도적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넥스트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입니다.


# 프립이 초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창업 시작

  • ‘여가’라는 성장하는 큰 시장에 뛰어들었음

  • 같이 먹고자며 ‘플랫폼 네트워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임계치까지 초기 창업 멤버들과 호스트들이 헌신하며 회사를 키움

  • 찐팬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찐팬들이 바이럴을 발생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멋진 액티비티 경험과 멋진 사진)를 효과적으로 구성

  • MZ세대에 맞는 ‘느슨한 커뮤니티’ 전략


# 기타 주요 수상 및 실적

  • 2015 앱스토어 ‘올해의 주목받은 앱’ 선정

  • 2015 앱스토어 오늘의 앱 15회 선정

  • 2015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최우수상 수상

  • 2016 구글플레이스토어 ‘올해의 베스트 앱’ 선정

  • 2016 한국관광공사 관광벤처기업 선정

  • 2017 서울시 관광 스타트업 선정 및 최우수상 수상

  • 2018 트렌드코리아 ‘나만의 케렌시아’ 사례에 소개

  • 2019 오프라인 공간 <프립캠프 제주> 오픈 (제주도 서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