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보틱스

🙎‍♂️ 이 회사 창업자 이야기

구구절절 서울로보틱스 창업하기 이야기 (1)

서울로보틱스 이한빈 창업자 스토리


서울로보틱스는 라이다 소프트웨어 기술 스타트업으로 한국에 본사가 있으나 직원 30% 이상이 외국인이며 영어로 소통하는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임. BMW, 벤츠 등 세계 유수의 자율주행 기술 회사들과 협업을 하며 2020년 상반기 65억 시리즈A 투자를 일으키고 하반기부터 매출을 일으키며 성장하고 있음. EO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87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91년생 창업가 이한빈 대표의 리더십과 비전, 팀의 기술력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술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함.


인터뷰도 여러 번 했고 같이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하면서 보고 들은 얘기를 편하게 음슴체로 정리해서 공유해보겠음.


이한빈 대표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처음 갔음. 유학 갈 돈이 있어서 유학 간 거지만 부모님과 함께 가거나 따로 번듯한 방 하나 렌트해서 살 수 있는 그런 형편까지는 아니었음. 부모님, 친척들은 모두 한국에 있었고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게 됐는데 기숙사에서 가장 어렸음. 주말에 미국인 친구들은 다 집에 갔는데 홀로 기숙사에 남아있는 게 너무 외롭고 싫었음. 


하루는 용기내서 주말에 집에 가는 미국인 친구에게 주말 동안 너네 집에 가서 같이 있어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좋다고 했고 얘 말고 다른 애들도 이렇게 호의적인가 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대부분 좋다고 답해줌. 자기 자식처럼 대해준 친구 부모님들이 많이 있었고 그렇게 다양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보냄. 당시 미국에서 주말을 같이 보냈던 친구 부모님 중 지금까지 연락을 자주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분들이 많음. 이러한 유년시절 경험을 통해 세상은 나를 좋아해주고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많다는 것, 세상은 안전하고 나는 자유롭게 살 수 있구나 라는 걸 느낌. 공동체에 대한 가치와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는 성격으로 자라나게 됨. 미국 친구들은 너는 사막에 떨어뜨려 놓아도 어떻게든 잘 살 친구라고 얘기했음.




대학은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함. 펜실베니아 주립대는 펜실베니아주 시골동네에 위치한 곳으로 한두 시간 산책을 해도 사람 한 명 보기 어려운 그런 동네임.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뉴욕과 피츠버그로 약 차로 운전해서 3시간 정도 가야하며 젊은이들은 대학생들밖에 없는 그런 동네임. 펜스테이트 선배 중에 IBM, Intel, NVIDIA, Tesla, AMD 등을 거치면서 CPU의 성능을 끌어올린 분이 있었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기술, 테크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실리콘밸리는 최고의 인재들이 다양한 회사를 옮겨다니며 배우며 기술력을 높여나가는 것을 보고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으며 엔지니어로서 추구할 수 있는 미국 중산층의 삶을 동경하게 됨. 연봉 6~7천만 원 받는, 마당있는 집 한 채 있고 강아지 키우며 회사 다니는 엔지니어의 삶을 꿈꿨음. 학교 공부는 열심히 했고 사람들과 그룹 스터디를 만들어서 같이 공부하는 걸 즐겼음.


23살에 군대에 갔음. 사실 미국에서 오래 지냈으니 군대를 안 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음. 대표적인 수법이 학업 및 취업 등을 핑계로 무한정 입대를 미루며 비자를 얻거나 위장 결혼을 하거나 등인데 방법은 있었음. 20대가 되고 나서는 한국말도 안 쓰다보니 점점 서툴러졌고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할 방법이 없었으나 부모님도 한국을 빛내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한빈'이라고 지어주시기도 했고 또 그런 사람으로 커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입대를 함.


군생활은 사당 근처 수도방위사령부에서 탱크 수리병으로 복무했음. 한국말과 한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 군생활이 편하진 않았음. 식당에서 식판을 찾는데 선임한테 ‘plate’ 어디에 있냐고 했다가 혼나고 헬멧을 ‘하이바’라고 하지 않아서 혼났음. 군생활 동안 한국말이 많이 늘었고 한국 문화에도 많이 적응함.



군대에서 막 전역을 했을 당시 26살 시절이 가장 힘들었음.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인공지능 분야는 더 빠르게 변하고 있었음. 인공지능 어떻게든 글로벌 기업에서 인공지능 엔지니어로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미국 회사에 취업을 하고자 했으나 당시 트럼프의 반 유학생?! 정책들로 최종 면접까지는 많이 갔지만 비자 때문에 어렵다, 영주권을 받으면 다시 지원해라 와 같은 답변을 들었으며  캐나다, 호주에도 비자를 신청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음. 기술 세계의 중심에서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음. 한국에도 물론 훌륭한 기술 기업들이 많았지만 변화를 리드하는 것보다는 누군가 변화의 문을 열어젖히면 빠르게 쫓아가는 걸 잘하고 또 선호했기 때문에 한국 회사 취업은 너무 하기 싫었음.


전역 후 취직 준비 과정에서 ‘유다시티’라는 교육 기관에서 자율주행 기술 관련 온라인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운영했는데 스터디 그룹 구성원들 중 굉장히 뛰어난 분들이 많았음. 그때 마침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경진대회가 열렸는데 라이다, 레이다, 카메라를 써서 주변 인식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도록 만드는가 겨루는 대회였음. 스터디 그룹 구성원들을 데리고 나갔는데 전 세계 2,000팀 중 10위, 라이다 부문 1위를 달성함. 이 대회에서 상을 타고 실리콘밸리 빅 테크 기업들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중 가장 연봉을 세게 부른 곳은 무려 6억 원이었음. 이때 이 분야에 미래가 있다는 걸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라이다 소프트웨어로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보안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2017년도 6월 경진대회가 끝나고 2017년도 7월 창업을 시작하게 됨.






시장을 이해하고 첫 고객, 첫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전 세계 다양한 도시를 돌아다님. 미국에서는 100개가 넘는 도시를 돌아다녔고 이스라엘 등도 방문해 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돈을 빌렸고 가장 저렴한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다양한 시장을 경험함.


카메라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던 1980년대 가격은 억대였음.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는 몇 백원대까지 있음. 라이다도 똑같이 될 것이라 생각했음. 라이다 센서는 초기 가격이 수십억대였는데 2017년에 수천만 원대로 떨어졌으며 가격이 조만간 백만 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음. 결국 라이다가 보편화되는 시점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누가 더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느냐였음. 카메라는 2D에 특화된 기술이었고 라이다는 3D를 가장 정확히 담고 측정,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전망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음.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급화되는 시점에 카메라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M&A 되는 사례도 많았음. 라이다 시장에서도 분명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음.


회사 이름은 ‘서울로보틱스'라고 지었음. 한국을 빛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창업가로서 ‘서울'이라는 이름을 담은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켜보리라는 다짐을 담았음. 회사의 초기 멤버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유다시티에서 만난 자율주행 스터디그룹 멤버들이었음. 창업을 할 거고 투자를 받아올 테니 일단 본업을 하면서 필요한 일을 도와달라고 했고 투자 받으면 풀타임으로 조인라고 함.


그냥 번외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크록스 라는 브랜드에 꽂혀서 1년 365일 크록스만 신고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 때 지냈던 보스턴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보스턴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음. 10년 째 같은 패션을 유지하고 있는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사를 가진 사람인지 잊지 않을 수 있고 또 그걸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인 거 같아서 계속 그러고 다녔다고 했음. 지금도 사업 미팅을 할 때 똑같이 그렇게 입고 다녔으며 외국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은 적 없으나 한국에서는 비즈니스할 때 어려울 때도 있었음.






다음 이야기…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경험한 것과 팀 빌딩 과정


태용이 생각하는 이한빈 창업자가 창업할 수 있었던 이유

  • 어린 나이에 유학에 가서 글로벌 시각을 갖게 되었고

  • 글로벌 시장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거침

  • 최신 기술과 산업 동향을 접할 수 있는 대학교에서 기업의 동향과 선후배를 보면서 세상의 흐름을 빠르게 읽음

  • 원하는 삶을 살고 원하는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젊은 나이에 충분히 세상을 경험할 시간을 가짐